#지난 설 '귀포자(귀성을 포기한 자)'의 길을 택한 이 모 씨(28세·여)는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는 취업준비생이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도 취업은 언제 하느냐, 시집은 언제 갈 거냐는 등 걱정만 늘어놓아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남들처럼 여행을 떠날 형편도 아니라 집에서 푹 쉬었다”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 모 씨가 홀로 심심치 않은 명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바로 TV와 술.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스트레스도 풀고 힐링했다”는 그가 연휴 마지막 날 버린 술병은 10여 개에 달했다.
설 연휴가 끝난 뒤 소화불량이나 두통, 무기력증 등 명절 후유증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씨와 같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홀로 술을 마시며 명절을 보낸 귀포자들에게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습관처럼 자리 잡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편의점 씨유(CU)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추석·설 명절 연휴기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 1인 가구가 밀집한 원룸촌, 고시촌, 오피스텔 등 주택가의 지난해 도시락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0.3%, 냉장 간편식 매출은 30% 이상 급증했다. 덩달아 라면과 맥주 등의 매출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며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른 나홀로족은 혼술은 물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여(혼자 하는 여행)' 등을 당당하게 즐기는 추세다.
문제는 혼술이 늘어날수록 알코올 의존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히 취업난과 경제난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귀성을 포기한 비자발적 나홀로족의 경우 같은 혼술이라도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www.dsr5000.com)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귀포자의 경우 여행 등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별다른 대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긴 연휴를 맞이하게 된다”면서 “이들이 무료함을 달래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혼술”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만약 술이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면 계속해서 술을 찾게 되고 이러한 혼술 습관은 과음·폭음과 같은 좋지 않은 음주습관을 유발할 수 있다”며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계속 혼자 술을 마시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혼자 술을 마시게 되면 스스로 주량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돼 본인 주량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된다.
또 술을 계속 마시게 되면 처음에는 적은 양으로도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지만 나중에는 더 많은 양의 술을 원하는 중독 상태에 노출된다.
알코올은 심장박동과 혈압을 높여 심혈관계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과다하게 마실 경우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심하면 사망까지 이를 수도 있다.
특히 혼술처럼 옆에서 제어 또는 관찰해 줄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음주 중 사고가 발생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월에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영어 원어민 강사로 일하던 캐나다 국적의 A씨(53세·여)가 자신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한 달여 전부터 휴직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진 그의 원룸에는 빈 맥주병 100여 개가 쌓여 있었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검안을 통해 알코올 의존증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김석산 원장은 “1인 가구 500만 시대, 1인 생활 문화가 확산되면서 혼술러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가족, 친구, 동료의 참견이나 걱정이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혼술족들의 술 문제를 주변에서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증상이 심각해진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이어 “자신의 주변에 혼술을 즐기거나 명절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