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회 특집]글로벌 시대 생존 조건- 교육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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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특집]글로벌 시대 생존 조건- 교육은 희망이다
  • 이경철
  • 승인 2008.1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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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화’는 글로벌 시대의 과제

오늘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여러 키워드들이 있다. 그 예를 들면 컴퓨터, 인터넷, IT,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등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글로벌화’(Globalization)"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화 즉 세계화란 무역·자본 자유화로 재화·서비스·자본·노동·아이디어 등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각국 경제가 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의 데오도르 레빗교수가 1983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5월호에 기고한 "Globalization of Markets"란 글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레빗 교수는 신기술, 특히 미디어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진다는 의미진다는 의미로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는 국경개념이 무너졌다. 글로벌 기업의 표준화된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서 쓰이고 있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거는 지금 시대를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했다. 농경시대와 산업화 시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 낸 지식정보화 사회로 바뀌었다. 21C 현대 사회는 지식산업과 정보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지식정보화 사회의 특징은 인간의 지적 창조력이 높게 요구되어 창의력, 정보처리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을 강조한다.
글로벌 시대, 지식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빠른 변화다. 예수 탄생을 전후로 역사는 BC와 AD로 나뉜다. 예수 탄생 때의 농업사회에서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18세기 중엽까지 1800년의 변화가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1년밖에 안 걸린다. 아마 그 기간은 점점 더 단축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은 ‘메모리 신성장론’을 통해서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두배 씩 성장한다는 ‘황의 법칙’을 냈고 실제 들어맞고 있다. 삼성전자가 1999년에 256M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한 이후 2000년 512M, 2001년 1Gb, 2002년 2Gb, 2003년 4Gb, 2004년 8Gb, 2005년 16Gb, 2006년 32Gb, 2007년 64Gb 제품을 개발하여 그 이론을 실증하였다.
우리 생활의 한 단면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인터넷 없는 세상에 산다고 생각해보자. 참으로 불편할 것이다. 인터넷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1969년, 우리나라에서 상용화 된 것은 불과 14년 전인 1994년이다. 그런 인터넷이 지금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14년 전 인터넷은 참을 인자 인터넷이었다. 지금은 영화 한편을 다운 받는데 불과 1-2분이면 되지만 그때는 사진 한 장을 다운 받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그렇다면 이 인터넷이 향후 10년 뒤에 어떻게 어디까지 발전할까?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은 없다. 미래학자들조차도 인터넷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 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이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바뀔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가올 미래, 새로운 시대에 강자는 누가 될 것인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존재가 강자일까? 그렇지 않다. 지구가 탄생한 것은 45억년 전이다. 이 지구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몸집을 갖고 나타난 존재는 공룡이다. 공룡은 지금부터 2억3년만 년 전에 이 땅에 출현했다. 아르젠티노 사우르스는 몸길이 가 35미터-45미터, 몸무게가 85-100톤이 나갔고, 울트라 사우르스는 몸길이 44미터, 몸무게는 10~20톤이었다. 브라키오 사우르스는 몸길이 30미터, 몸무게 54미터, 키 15미터였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들이 6천5백만 년 전에 일시에 사라졌다. 과학자들은 우주를 떠돌던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지구 대기 환경이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영화 딥 임팩트에서처럼 직경 1-2km의 운석이 지구를 때리면 맨틀에서 분출된 용암과 더불어 대기권까지 올라간 화산재가 태양을 가리면서 기온은 영하 6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바다거북을 제외한 해양의 파충류 전부가 멸종을 했고, 육지에서는 일부 양서류와 파충류, 곤충들이 혹독한 환경을 이기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남은 곤충들 가운데 바퀴벌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곤충강 바퀴목’에 속하는 바퀴벌레는 물만 있으면 약 20일간 생존하고 가정집 냉동실 안에 감금해도 약 3일간 버텨낸다. 한 번의 교미로 평생 알을 낳을 수 있고 알을 암컷이 배안에 넣고 다닌다.
알의 숙주가 위협을 느끼면 그 즉시 알집을 떨어뜨린다. 바퀴벌레가 도망가는 속도는 시속 150km다. 이 놈은 자기 몸의 몇 천 배의 높이에서 떨어져도 안전하게 착지를 한다. 숙주가 독극물에 의해 사망하면 그 자손은 즉시 그 독극물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된다. 인간이 제조한 플라스틱 등 합성물질은 물론 채소, 썩은 동물 등 가리지 않고 먹는다. 몸 중심으로 전방 160도 거리 3.25미터의 물건을 탐지한다. 바퀴벌레는 인간보다 125배나 발달된 후각을 갖고 있다.
이 녀석은 다른 곤충보다 14배 발달된 다리갈퀴 32배나 발달된 턱을 갖고 있으며 지네의 독성에 버금가는 독을 분비한다. 눈은 퇴화해 보지 못하나 시각보다 감지능력을 사용함으로써 본능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절단부분에 대해 신경을 차단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과학자들은 만일 우주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아마 바퀴벌레와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 지식정보화 사회의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바퀴벌레와 같은 변화적응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바퀴벌레와 인간이 다른 것은 바퀴벌레가 진화를 통해 이런 능력이 DNA에 녹아있다면 인간은 후천적 교육에 의해 이런 능력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2. 교육은 희망이다.
현대를 사는 보통사람의 대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3가지 화제가 있다. 그 첫째가 경제적 안정 속에 안락한 노후 생활에 대한 기대다. 그 두 번째가 활력 있는 삶, 건강의 문제이고 세 번째가 자녀교육문제다. 3여(餘)란 말이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세 가지 여유로움이라는 말이다. 첫째의 여유로움은 저녁에 있다. 아침부터 시작된 바쁜 하루를 끝내고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이 여유로운 담소를 나누면 거기에 행복이 있다. 두 번 째 여유로움은 겨울에 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가꿔 가을에 추수를 해 일 년 양식을 준비하면 겨울밤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다. 세 번째 여유로움은 노년에 있다. 자녀 모두를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낸 뒤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는 노년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세 가지 토픽 가운데 첫 번째는 은행, 증권회사, 투자자문회사의 파이낸셜 플래너들의 몫이고 두 번째는 의사 선생님들의 몫이다. 오늘은 세 번째 화제, 교육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교육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교육은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교육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최근 그 교육에 올인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8학군은 ‘학원학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목고 입학 설명회와 외국유학 설명회에 수백 명씩이 모인다. 얼마 전 신문에 난 통계를 보니까 국민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조기유학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됐다.
통계를 한번 보도록 하자. 2007년에 대학교 이상의 학력자 가운데 해외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은 21만7,959명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4% 증가하였다. 이 중 5만9,022명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며 이는 지난해 대비 2% 증가한 수이다. 그러나 중국으로 떠난 한국 유학생의 수는 지난해보다 45%가 증가한 4만2,269명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는 주로 대학생이상의 유학생 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유학열풍과는 조금 무관하다. 초중고생은 이보다 훨씬 작지만 2006년 통계로 보면 부모가 해외로 파견되면서 함께 간 학생과 가족 이민을 떠난 학생까지 모두 포함해 출국한 초중고 학생 수는 4만5,431명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떠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앞집 아이도 떠나고 뒷집 아이도 떠나고 다 떠나는데 우리 아이만 보내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 물결에 동참하는지 모른다.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겨울 방학이나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적지 않은 자리가 빈다고 한다. 대부분 해외로 공부하러 간 학생들의 자리다.
그들이 왜 이렇게 자녀들을 외국으로 보내 공부를 시킬까?
거기에는 “너는 나보다는 잘살아라”는 자녀에 대한 희망 때문이라고 본다. 적어도 영어를 배우면 세계화의 흐름에 뒤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중에는 자녀를 글로벌 스탠더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환경과 시스템이 좋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유학을 보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옛날부터 교육은 신분상승의 통로였다. 사농공상의 계급사회에서는 물론 지금 계층사회에서 교육은 신분상승을 이끌어주는 동력이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만일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의과대학을 입학해서 의사고시를 하지 않았다면 존경받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큰 힘은 ‘교육’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큰 농사를 짓는 집에는 머슴이 있었다. ‘머슴의 아들’은 가난을 대물림해 남의 집 농사를 지어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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