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분마다 한 명 목숨 끊고 1분30초에 한 명 자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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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분마다 한 명 목숨 끊고 1분30초에 한 명 자살기도
  • 윤종원
  • 승인 2006.09.25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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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개인차원 넘어 국가, 사회차원에서 포괄적 접근 필요

인간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기적이다. 생물학적으로만 봐도 정자 하나가 난자 하나를 만나 사람으로 탄생하려면 가히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엄청난 승리이자 지극한 축복이며 은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가.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 그들은 축복과 은총의 삶을 왜 그토록 허무하게 패배의 늪으로 내던지며 저주하고 증오하면서 떠나는가.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사망원인 통계결과"는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자는 인구 10만 명에 26.1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고 자살률을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보다 2.2배나 증가한 것이다.

좀 더 실감나는 통계로 설명하면 이렇다. 사망숫자로 쳤을 때 우리나라는 일 주일에 한 번씩 끔찍했던 대구지하철 참사를 경험한다고 할 만큼 자살빈도가 높다. 자살자는 매년 약 1만2천 명. 지난해 기준으로 44분마다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1분30초마다 한 명이 자살을 기도한다. 등골 오싹해지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이홍식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에게서 얘기를 들어봤다. 자살예방협회는 2003년에 창립한 시민단체. 협회는 자살예방사업, 위기개입사업, 사후관리사업 등 자살관련 활동을 펴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자료는 자살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질환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 분야 전문가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개인적으로 특별히 놀랄 만한 발표는 아니었다. 우리 협회가 창립된 후 토론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 않아 전문가로서 무척 안타깝다. 자살률은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꺾기 위해선 개인차원이 아니라 국가, 사회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자살 추이는 어떤가.

▲사망원인별로 봤을 때 자살은 1992년에 3천533명으로 10위를 차지했다. 그러다 1998년에 8천569명으로 7위로 뛰어오르더니 2년 전에는 1만1천523명으로 5위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는 1만2천명선으로 4위로 치솟았다. 선진국의 자살이 사망원인의 10위권을 맴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통 일이 아니다. 참고로 , 우리나라 사망순위는 암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교통사고가 2004년에 7위로 떨어지며 자살과 순위바꿈을 했다.

IMF 외환위기 때 급증했던 자살률이 이후 다소 떨어졌다가 2004년부터 급격히 올라갔다. 현재 연 6% 정도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했던 일본 등이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자살이 이처럼 빈번하게 이뤄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 또는 사회적 원인은 뭐라고 보는가.

▲자살 발생 원인을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순 없다. 매우 복잡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 계층 등 행정관리직의 자살률이 현격히 낮은 반면 빠르게 몰락하는 농어촌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자살률이 매우 높은 걸 보면 사회경제적 이유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사회의 급속한 변화 또한 자살과 관련이 있다. 전통의 가치관이 붕괴되고 이혼, 별거 등으로 가족관계가 와해되면서 고립감에 빠져드는 계층이 늘었다. 직장 역시 종전과 달리 소속감을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어려울 때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가 도와주고 이끌어주었는데 지금은 그 안전망이 크게 약해졌다.

이처럼 스트레스 요인은 많은데도 정신위생의 수준은 형편 없이 낮다.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가 전반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같은 시대 흐름과도 관계가 있는가.

▲한국의 인터넷망은 세계적이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면서 자살에도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공기총이나 독극물 등이 인터넷을 통해 버젓이 판매되고 자살사이트도 운영되면서 독특한 자살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살 도우미까지 있지 않은가.

인터넷 문화가 자살충동과 만날 때 결행으로 이어지기 쉽다. 자살은 조금만 시간을 끌어도 방지할 수 있는데 인터넷 등은 자살충동을 즉각 실현케 도와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선진국인 일본의 지난해 자살률이 한국과 헝가리(2004년 기준 10만 명에 22.6명)에 이어 3위(20.3명)를 기록한 걸 보면 꼭 경제적 이유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살률이 높았다. 문화적으로 자살을 미화하는 경향까지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살 방지 전문가들이 많이 양성되고 각종 계몽과 연구활동을 꾸준히 전개한 결과 근래 들어서는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우리로선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하겠다.

--자살의 양태로 볼 때 성별연령별로 차이가 나는가.

▲자살률은 성별로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2.2배 정도 높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더 받는 데다 성격이 더욱 충동적이고 자살방법의 선택 또한 극단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근래까지만 해도 가정과 직장생활로 고민이 큰 중장년층의 자살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노인의 자살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수명이 길어져 노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으나 경제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하고 가족해체에 따른 고립감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증가했다.

노인 중에서도 그 나름으로 준비가 돼 있는 50-60대는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그러지 못한 70-80대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대개 질병으로 시달리기 마련인데 독거노인일 경우에는 속수무책이다.

--무엇이 자살로 이끄는가. 다시 말해 자살의 심리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 가지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시적 절망감과 불행감 때문에 자살을 결행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자기인생이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는 학습된 절망감 때문이다.

부적절한 열등감도 한 원인이다. 특히 청소년들은 주어진 환경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채 과도하게 논리적으로 비약한다. 단순한 실수를 인생의 실패로 확대규정해버리는 것이다.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를 때도 살인을 하거나 자살을 한다.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상시적 외로움과 절망감이 자살로 이끌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자살자의 70-80%가 우울증을 앓고 난 뒤 합병증의 성격을 띠면서 자살로 간다. 오해하지 말 것은 우울증은 유전적 경향이 있으나 자살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자살은 누구보다 본인 자신에게 불행이지만 가족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준다.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손실을 안기는데….

▲한 사람이 죽으면 그 때문에 직접 피해를 보는 사람은 평균 6명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매년 1만2천 명이 죽으면 7만여 명이 심한 죄책감과 우울감 등 후유증을 겪으며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10년이면 70만 명이라고 본다면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린 아이가 가족의 죽음을 경험할 경우 원만한 성장에 장애가 크다. 게다가 1년에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30만 명에 이르지 않은가. 중소도시 인구 전체가 자살을 기도한다고 보면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살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을 합하면 매년 무려 3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자살은 의사나 전문가에 맡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하겠는데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정부는 2004년에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세웠으나 자살률이 매년 증가하는 것에서 보듯이 당장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정부의 5개년 계획은 면밀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왔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졌고 그 결과 자살률은 도리어 올라가고 있다.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두 해에 해결되리라고 성급하게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가차원의 관련법이나 기구가 없다는 게 우리 자살예방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자살률 1위국인 데도 정부의 전담직원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런 마당에 관련예산이 제대로 확보되겠는가. 전문가 양성도 여전히 뒷전이고 대학에 관련학과도 설치돼 있지 않다.

--자살 징후를 보일 때 가족이나 친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무조건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설득하지 말고 이야기를 하게 해야 한다. 자살할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함께하며 공감만 해주어도 자살의 대부분은 막을 수 있다. 그래서도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에게 공감의 상대는 부모나 선생보다 친구가 좋다. 그만큼 평소의 인간관계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은 자살이 생사관이 올바르게 서 있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풀이한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여전히 금기처럼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자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살에 대한 편견이 크다. 그래서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심약함, 무능함 등 개인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근본문제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개인은 물론이지만 사회, 국가가 공히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인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회피한 채 근본에 주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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