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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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타짜
  • 윤종원
  • 승인 2006.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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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하게 꽉 짜인, 타짜

전혀 새로운 "타짜"가 태어났다. 최근 잇달아 선보인 만화 원작 영화가 원작의 맛도, 그렇다고 차별화된 새로운 맛도 내지 못한 채 용두사미처럼 사라진 것과 달리 "타짜"(감독 최동훈, 제작 싸이더스FNH영화사 참)는 원작의 캐릭터를 철저히 탐구해 든든한 버팀목으로 사용했으면서도 원작과는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영화가 됐다.

"라디오 스타"가 안성기와 박중훈의 영화면서 결국 이준익 감독의 영화이듯, "타짜" 역시 조승우김혜수유해진백윤식의 영화지만 이를 통솔한 것은 최동훈 감독이다. 최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준 시나리오 집필 솜씨와 탁월한 편집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긴박감이 느껴지는 치밀한 구성
최 감독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타짜" 1부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사실은 "타짜" 전체를 아우른다고 해도 될 법하다. "범죄의 재구성"을 통해 정교한 유리공예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만화의 에피소드를 따오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꼭 필요한 내용만 취사선택했다.

고니(조승우 분)는 도박에 빠져 누나의 위자료를 다 날린 후 평경장(백윤식)을 찾아가 타짜(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를 칭하는 은어)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평경장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살해범이 아귀(김윤석)라고 생각한다.

고니는 정 마담(김혜수)이 설계한 도박판을 고광렬(유해진)과 함께 휩쓸면서 아귀를 찾으려 한다. 아귀를 찾는 과정에서 고니는 도박의 세계로 들어서게 한 박무석(김상호)과 곽철용(김응수) 등과 맞붙는다.

한편 고니는 화란(이수경)을 만나 풋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호구를 만나 큰 건을 잡는 것은 물론 고니마저 곁에 두고 싶어하는 정 마담의 설계로 고니와 아귀는 처절한 선상의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최 감독은 "영화 시작 한 시간까지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나머지 시간에 이야기를 풀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면서도 "원작이 있어 시나리오를 3개월만 쓰면 될 줄 알았는데 1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말로 이야기를 가다듬는 데 큰 공을 들였음을 내비쳤다.

방대한 이야기가 집약되는 과정에서 최 감독은 역시 "범죄의 재구성"에서 유용하게 활용한 바 있는 플래시백을 활용한 교차 편집으로 관객의 집중력을 유도한다. 다만 화투를 소재로 한 만큼 빈번하게 등장하는 화투 장면에서 기본 룰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내용을 파악하느라 인물들의 순간적인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극도의 긴장감을 향해 쉼없이 질주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팽팽하다는 인상도 영화를 어렵게 느낄 수 있다.

◇살아 숨쉬는 캐릭터&"김혜수의 재발견"
원작과 비슷한 맛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전혀 다른 색깔을 볼 수 있는 건 캐릭터의 변주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고니, 평경장, 정 마담, 고광렬, 아귀, 짝귀, 박무석, 곽철용 등 주요 등장인물이 그대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영화 캐릭터가 훨씬 더 강렬하다. 고니는 조승우를 통해 순수하지만 능글맞고, 우직하지만 빠른 캐릭터로 표현됐다. 조승우는 "어느 사람에게도 기죽지 않고 붙을 수 있는 "깡"을 부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광렬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아는 유해진 덕분에 서민형 타짜로 더욱 확실히 표현됐다. 곽철용도, 박무석도 등장하는 장면 이상으로 기억될 만큼 강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아귀 역의 김윤석은 앞으로 영화계에서 소중한 존재로 다뤄질 것 같다. 선한 외모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악귀 같은 아귀를 표현해내는 연기 공력이라니. 김윤석의 가치는 그를 알아보는 이를 통해 나날이 높아질 것이다.

그 누구보다 원작과 가장 차별화된 이미지로 등장하는 인물이 정 마담이며,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배우는 김혜수다.

단순한 도박판의 설계자에 그쳤던 정 마담은 영화 "타짜"에서 요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완벽한 팜므파탈로 태어났다. 꽃같이 아름다우면서도, 뱀처럼 사악하고, 돈이라는 욕망에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고니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갖고 있는 여자가 됐다.

정 마담은 고니와 함께 영화를 이끄는 두 축이 된다. 고니와 평경장, 혹은 고니와 고광렬의 버디무비가 아니라 고니와 정마담의 "투톱영화"라 할 만큼 영화는 정 마담의 시선을 중요시했다.

김혜수는 적역을 만났다. 영화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을 만난 것. 이 때문일까. 김혜수는 자신의 모든 매력을 쏟아부었다. 전라 열연조차도 "영화 진행상 그래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선뜻 받아들였을 만큼 김혜수 역시 새로운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 과감했다.

늘 그렇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스크린에서 보는 기쁨은 언제나 행복한 경험이 된다.

꽉 짜여 있지만 그 세밀함과 촘촘함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타짜"에 대한 관객의 평가가 궁금하다.

28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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