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병원인 새해소망] 박준욱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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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병원인 새해소망] 박준욱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홍보실장
  • 병원신문
  • 승인 2024.0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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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추억과 소망

‘2024년 새해 소망’에 대한 기고문을 작성해달라는 숙제를 받아와서 책상에 앉았다.

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소망이 무엇인지.

가족, 건강, 일…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2001년 3월 20대에 처음 흰 가운을 입고 인턴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추억을 더듬어 본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의사의 길을 시작했다.

하루 3시간 쪽잠을 자면서 환자를 보고 분주했던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수술시간만 12시간 이상 걸리는 두경부암 중환자들의 큰 수술들이 매주 시행됐고,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머릿속의 도파민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자극했다.

하루하루가 버티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그때 단 한 번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주말을 기다렸다.

그 친구가 당직을 서던 병원의 외래에서 데이트를 했던 추억이 또렷하다.

결혼 후 아내가 출산하던 날, 긴 수술 때문에 다음 날에야 입원실에 갔을 때 혼자 누워 있던 아내의 모습을 보고 미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공의 시절에는 돌이 안 된 아기를 용인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맡아 주셨다. 

주말 오프 때에 얼굴만 잠깐 보고 올라오면서 엄마를 낯설어 하는 아기의 모습에 서운해 하던 아내를 위로하며 올라왔다.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고 나는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 부대에 의무중대장으로 발령이 나고, 군 관사로 이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세 식구가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다 쓰러져가는 관사는 말 그대로 폐허 같았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둘이 청소하고, 도배하고, 방문에 페인트칠하고, 싱크대 고치고, 테라스(?)에는 아기를 위한 자그마한 풀장(?)까지 만들어 주었다.

셋만의 첫 공간을 만들어 놓고 행복했다.

1년간의 군대 생활을 마치고 아기와 집사람은 먼저 서울로 상경하고 나는 국군강릉병원에서 2년간 군 생활을 더하고 서울성모병원 두경부외과 임상강사로 근무를 시작한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약 15년간의 세월이 흐르고, 그때에 비하면 많은 것들이 안정되었다.

나는 대학병원 교수로 아내는 개원가에서 자기 일을 각자 하고 있고, 또 그 아이는 벌써 20살 대학생이 되었다.

환자를 볼 때에도 그 때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더 큰 수술을 하고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한다.

매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는 자부한다.

하지만 매일을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환자의 질병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어있고,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다음 과제가…. 

어느덧 환자와 사람들이 업무와 일이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현재의 공간에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게 된다.

행복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릴 여유가 부족하다. 

‘새해의 소망’에 대해 생각하면 사람들은 먼저 ‘행복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이나 변화’를 떠올리곤 한다.

건강한 신체, 사랑하는 가족, 진정한 친구, 직장에서의 승진과 동료들의 인정 등등.

하지만 이런 조건들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고, 또 갖춰지더라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많은 ‘Head and Neck Surgeon’들은 공감할 것이다(긴 수술을 자주 하고 맥주를 즐기시는 surgeon이면 누구나~).

열 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갈증에 입이 바싹 말라 있을 때에 마시는 맥주 첫 한 모금의 행복감을…

맥주 한 잔에도 행복을 충분하게 느낀다. 

그래서 나의 새해 소망으로 ‘오늘’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지금 이 시간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바라본다.

또 십여 년이 지난 후에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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