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창과 방패의 대결…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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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창과 방패의 대결…결과는?
  • 최관식 기자
  • 승인 2023.06.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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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력 수급 전문가 포럼, 과학적 근거 기반 적정인력 확충 방안 논의
추계 방법에 따라 2035년 9,654명 혹은 2만7,232명 부족하다는 결론 제시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 “부족하지 않고, 의사수 늘면 진료비만 증가”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장기적으로 의사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부족하지 않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적정 의사수 추계를 위한 공론의 장이 본격 열렸다.

의료계를 제외하고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각종 연구소는 필수의료 공백이 의사인력 부족에 따른 현상이라 진단하고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비해 의사단체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책적 지원 결핍에 따른 특정 과목과 분야에 대한 기피현상에 기인한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2025년 대입부터 의과대학 모집 정원을 늘리겠다고 이미 공언을 한 가운데 적정 증원 규모 및 방법을 두고 견해차를 좁혀나가기 위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6월 27일(화)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인력 확충 방안 논의를 위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6월 8일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의사인력 확충방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하고 미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 등을 위해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을 개최하기로 한 바 있다.

이날 포럼은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수급추계 방법론과 추계 결과에 대한 연구자 3인의 발제, 전문가 6인이 참여하는 패널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1부 발제에서는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 신영석 연구교수가 ‘의사인력 수급추계’를,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의대정원 논의, 문제와 대안’을, 한국개발연구원(KDI) 권정현 연구위원이 ‘인구구조변화 대응을 위한 의사인력 전망’을 각각 발표했다.

신영석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재직 당시인 2020년과 2021년에 실시한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추계’와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추계 연구’를 바탕으로 수급추계 방법론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추계결과 등을 발표했다.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추계에 따르면 2035년 의사수가 9,654명 부족하며 2021년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추계에서는 2035년 의사수 2만7,232명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

신영석 교수는 “2021년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 예방의학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진료영역에서 의사 공급이 수요에 비해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성(性)과 연령별 가중치를 적용할 경우 여의사 증가 현상을 감안하면 실질 공급량은 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인구감소 추이 등을 고려할 때 의사가 부족하지 않고, 의사가 늘면 건강보험 진료비 증가 등의 문제가 나타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필수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의과대학 학사 커리큘럼 개편 등의 대안을 제안했다.

우 원장은 “기존 의사인력 추계 연구는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의료 남용으로 인해 향후 의료비가 급증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고려는 없이 의료비 증가의 개연성이 높은 의사 수의 증원 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특히 AI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의사의 생산성 증대에 대한 고려와 의료 오남용에 대한 정책적 비전이 없고 향후 의사 인력 과잉 시 감원에 대한 대안 역시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OECD 국가들의 국민의료비 결정요인에 대한 실증분석에 따르면 인구 1천명당 의사 1명 증가 시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약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보건의료 서비스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서비스 제공을 늘려 이익을 증가시키는 유인수요가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유인수요가설은 우리나라처럼 소득이 높은 국가에서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의사 수 늘리는 정책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의사를 충분히 양산하면 남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갈 것이란 안이한 발상에 젖어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OECD 평균보다 3배 이상 많은 신경외과 의사 중에 뇌출혈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통해 (공급 확대는) 해법이 아닌 것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권정현 연구위원은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기반해 필요한 의료수요를 전망한 결과, 인구가 감소하지만 고령화에 따라 의료수요는 증가해 2050년 약 2만2,0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예측했다.

권 연구위원은 “필요한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해 일정 기간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며, 추계 결과에서는 2030년까지 매년 의대 정원의 5% 증원 시나리오가 2050년까지 필요 의사 인력 충족에 가장 가까운 수치를 나타낸다”며 “다만 2050년 이후부터 인구 규모 감소에 의해 의료서비스 수요 감소가 전망되므로 이후 의사 인력의 과도한 공급을 방지하기 위해 의대 정원의 추가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수를 늘린다고 자동적으로 의사 분포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의사 인력 분포 불균형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봉착한 지역별, 전문과목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추진하는 동시에 의사 인력 규모 조정을 통한 정책의 운용 가능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토론에는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김우현 교수,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비상대책위원장, 서울대 의대 오주환 교수, 연세대 예방의학교실 장성인 교수,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 등 6인의 보건의료 전문가가 패널로 참여해 수급추계 방법론부터 미래 의사인력 과부족에 대한 예측, 적정 의사인력 규모 및 정책 제언 등 다양한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국제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의료인력은 절대 부족 상태”라며 “의사 부족으로 인해 과로에 지친 의사와 3분 진료에 불만인 환자가 속출하고 진료보조인력(PA) 활용에 따른 갈등과 의료부문 간 불균형, 의사와 비의사인력 보상수준의 불균형에 따른 사회보상체계의 왜곡과 병원 경영 압박 등의 폐해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따라서 “의대 입학정원을 몇 년 내에 현재의 3,058명에서 4,000명으로 늘리고 편입학을 허용해야 한다”며 “전문과목 간 균형과 지역별 의사 균형 공급을 위한 미시적 정책들은 계속 시도돼야 하겠지만 전체 의사 인력의 공급이 원활해지면 상당부분 자동 조정기전에 의해 해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양한방 의료인력을 통합적으로 양성하는 통합의대 도입 등 의료인력 간의 역할 재조정 및 유연성 제고 전략과 일률적인 인력 배치 기준을 의료기관 종별 진료 기능과 역할, 환자 특성과 중증도 등을 고려해 차등하는 보건의료인력 배치 기준의 정비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성인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향후 인구고령화로 입원의료에 대한 의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입원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의대와 한의대가 같이 있는 대학의 경우 한의대 정원 일부를 의대 정원으로 자율적인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김우현 교수는 “5년마다 수립하도록 규정돼 있는 보건의료인력종합계획 내에 의대 정원 규정을 명시하고 정기적인 의료서비스 수요 전망에 바탕한 의대 정원 조정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권정현 KDI 연구위원의 발제는 정답”이라며 “합리적으로 판단되는 이같은 문제 해결 방식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추계 모형의 잘못이 아니라 그 모형에 도출된 결과를 현명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비상대책위원장은 “2019년부터 국내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국내 활동의사는 2010년 9만8천명에서 2020년 13만명으로 이미 30% 이상 증가했다”며 “인구 1천명당 활동의사 연평균 증가율이 OECD 증가속도의 1.4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의대정원은 지금도 줄여야 의사인력 과잉으로 인한 건강보험제도의 파행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의료공급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사인력 불균형과 재배치의 문제”라며 “필수의료 분야 근무환경 개선, 필수과 수련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의사 양성제도의 과감한 혁신 등 충분하고 과감한 건보재정 투자로 현재의 필수과 기피문제로 대변되는 국가 의료제도의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주환 서울의대 의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은 한번 정하면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경성적인 결정이라 보는 데서 과잉논쟁과 과잉결정 위험이 발생한다”며 “이 결정은 비가역적인 게 아니라 가역적이고 유연하게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한번 정해진 의대 정원이 초과 혹은 부족 등의 문제가 예상되더라도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의대 정원 논의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배경이라는 게 오 교수의 생각이다.

오 교수는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매년 필요한 의대정원 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협의와 합의를 통해 정책을 숙의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을 권고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현재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전제는 잘못됐다. 지금도 의사는 부족하다”며 “평균 이하 중진료권을 평균 수준으로 확충하는 데만 의사 약 2,500명이 필요하며 지역 책임의료기관을 300병상 규모로 확충하고 중환자실 전담의와 감염분야 전문의를 적정수준으로 늘릴 경우 의사 약 4,500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부족한 의사 수는 약 7,500~9,500명 수준이며 의사가 부족하면 의사의 월급이 높아지는 현상을 감안할 때 OECD 수준의 의사 수에 OECD 수준의 의사 수입을 적용하면 약 4조원의 국민 의료비 부담 감소 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의사인력의 수요‧공급 추계를 바탕으로 통계‧보건 전문가들과 적정 의사인력 규모를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 포럼을 마련했다”며 “고령화와 의료수요 증가 등 보건의료분야 정책환경의 변화와 필수의료‧지역의료 위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의사인력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이어 “정부는 수급추계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필수의료 강화에 필요한 최적의 의사인력 증원 규모를 도출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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