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 전사다] 고지전(高地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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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나 전사다] 고지전(高地戰)
  • 병원신문
  • 승인 2022.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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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서울아산병원 응급간호팀 155격리병동 간호사
고지 사수해 최후 방어선 지켜내는 코로나19 전사들
눈빛만 봐도 통하는 동료들에게 격려·위로·응원을

고지전(高地戰)

우리는 오늘도 고지(高地)를 사수(死守)했고 최후의 방어선(防禦線)을 지켜냈다. 포위망(包圍網)은 점점 좁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고지를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에, 우리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있기에. 나는 코로나 ‘전사(戰士)’다.

2020년 9월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을이다. 늦더위가 아직 끝나지 않을 무렵 본원 혈액내과 병동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됐다. 병원은 선제격리병동으로 운영하고 있던 155격리병동을 확진환자 전담 병동으로 전환시키고 자원 간호사를 모집했다. 백신도 없이 Level D 방호복에만 의지하고 환자를 간호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는 종양내과 병동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간호하던 10년차 간호사였다.

단지 ‘사람’이 보였다. 비록 한 명의 간호사였지만 작은 힘이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가겠습니다.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는 선생님들보다, 아직은 어린 후배 간호사님보다 저는 아직 미혼이고, 경험도 더 많잖아요.”

그렇게 손을 들었다.

간호사 10년의 경력은 새로운 유행성 감염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처음 Level D 방호복을 입고 격리구역으로 들어간 날, 확보되지 않는 시야과 한증막에서 일하는 것 같은 답답함, 귀에서 윙윙 울리는 전동식 호흡보조장치(PAPR)의 기계음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환자의 산소포화도는 떨어지는데 몸은 둔하고, 정신은 아득했다. 옷을 벗을 때마다 보호구 안에 흐르는 땀을 마주하고 수술복은 흠뻑 젖었다. 손과 발에는 습진과 피부염이 생겼다. 보호구가 찢어지기도 하고, 섬망으로 인해 공격적으로 변한 환자분들께 멱살을 잡히고 마스크가 벗겨지기도 했다. 이중장갑에 멸균장갑을 더하고 처치를 제공할 때는 촉감이라고는 없는 손끝에 온 신경을 끌어모았다.

병동에서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진행하며 지속적신대체요법(CRRT)를 시행했다. 하지만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의 손을 떠난 환자들도 있다. 마지막 순간, 황망한 가족들의 슬픔을 대신 전하고 시신백에 고인을 이중으로 봉할 때 헛헛한 마음이 스산했다.

2020년 8월 2차, 2020년 11월 3차, 2021년 7월 4차 대유행과 위드코로나를 지나며 병원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20년 3월 5일 선제격리병동으로 시작한 병동은 오픈 7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간호부 유행성감염병대응팀(e-EIDT, extended-Emerging Infectious Disease Team)이 구성돼 간호사들이 투입되고 격리중환자실이 신설됐다.

병동 500일을 기념하며 간호수기 ‘우리들의 반짝이는 500일’을 엮었다. 국가에서 내려진 행정명령으로 내과계 중환자실 1곳과 응급중환자실이 확진환자를 수용하게 됐으며, 155격리병동도 몇 번의 확장공사를 통해 중증 코로나 환자를 수용하는 병상을 증가했다.

2022년에는 감염관리센터(CIC, Center for Infection Control)가 오픈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시설에서 감염질환에 좀 더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나는 현재까지도 코로나 확진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이제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사이가 된 동료들이 있다. 보호구 너머 서로의 눈을 읽으며 격려를 받고 위로를 하며, 응원을 하고 마음을 나눈다. 아마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지속하는 한 간호사들은 격리구역 환자들의 옆을 동행할 것이다.

우리의 간호가 누군가에게 일상으로의 회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들도 한 명의 사람일 뿐, 영웅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만 모인 우리이기에 함께 이 시간을 버텨나간다. 모두가 각자의 최전방을 지키며 그렇게 소명을 다한다.

위드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입원하는 환자의 상태도 많이 변화됐다. 하혈을 하는 만삭의 임산부를 음압수술실에서 응급수술을 진행하고,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증가된 중증 환자들이 높은 농도의 산소치료가 필요해 119를 통해 내원하고, 대부분 입원하자마자 고유량가온가습캐뉼라(HFNC)를 적용하거나 비침습적기계환기(NIV)를 시행한다. 기도삽관을 시행하고 ECMO 치료가 필요하여 중환자실 전동을 대기하는 환자도 많아졌다.

매일 7000명이 넘는 확진자 수와 1000명이 훌쩍 넘어버린 중증 환자, 병상을 찾아 구급차 안에서 10시간 이상을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는 언론의 보도를 볼 때마다 점점 우리의 포위망이 좁혀져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고지(高地) 위에서 언젠가는 다가올 한계를 생각한다.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도망치고 싶다. 자리가 비워지자마자 밀려오는 환자들과 점점 하얗게만 변해가는 폐의 영상검사 소견을 보며 그 앞의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나약해진다.

하지만 뒤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이 시간을 이겨나가야 하기에 다시금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먼저 나아가 마지막 방어선(防禦線) 앞에 선다. 나와 동료들,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함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나는 코로나 ‘전사(前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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