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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결혼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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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결혼식 풍경
  • 병원신문
  • 승인 2021.1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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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서울대 명예교수)

요즘 결혼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예식장 로비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혼잡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인원에 제한이 생겨 그렇게 복잡한 광경을 보기는 어려워졌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와 함께 간다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가 되면 다시 예식장 로비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가득 차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혼식 초대 단계에서는 종이로 된 청첩장 대신 모바일 영상 청첩장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종이 청첩장이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다. 그 모바일 청첩장에는 신랑-신부의 사진과 이름, 부모님의 성함, 예식 시간, 장소(예식장), 찾아오시는 길, 교통편 등이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요즘은 혼주의 은행 계좌번호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 풍속은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역시 새로운 문화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에는 직접 참석은 어렵고 봉투는 꼭 전해야 할 경우 누구 편에 보낼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참 많았다. 이젠 간편하게 축의금을 전하고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매우 편리해진 셈이다.

그런데 결혼식 풍경으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주례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점은 결혼식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 바뀐 것이어서 다분히 역대급 큰 변화라 하겠다. 나도 결혼식 주례를 몇 차례 맡아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사실상 주례는 일단 맡게 되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이다. 주례가 예식 시간에 늦으면 행사 자체를 진행하기가 어렵고 많이 늦으면 예식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너무 늦는 경우 예식장에서 다른 주례를 급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교통 혼잡에 대비해 최소한 1시간 전에는 예식장에 도착해야만 한다. 만일 차가 너무 잘 빠져 1시간 반 이상의 시간이 남으면 예식장 부근 어디에서든지 시간을 좀 보내다가 예식장에 나타나야 한다. 반대로 주말이라 차가 너무 막히면 극도의 초초함을 떨치기 어렵다. 혹시 나 때문에 예식 진행을 못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하나 발을 동동 구른다. 주말에 서울 강남지역의 교통 혼잡이 두려운 경우에는 아예 지하철을 타는 경우도 많다.

주례사 준비도 늘 스트레스다. 신랑신부를 미리 만나 사귄지 얼마나 되었느냐, 서로 어디에 반했느냐, 정식 프로포즈는 했느냐, 취미는 뭐냐, 등등을 미리 들은 다음 주례사를 잘 준비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주례사보다는 그 신혼부부에 맞는 맞춤형 주례사가 신랑신부와 하객들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강의 준비하듯 열심히 주례사를 준비한다.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주례사를 하시는 주례 선생님들을 보면 무척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다.

작고하신 S의대의 K 명예교수님은 결혼식 주례를 많이 맡기로 이름난 분이셨다. 주례 1천쌍을 돌파하셨다고 하는데 이 중 몇 백 명이 동시에 진행하는 합동결혼식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주례 내용에 있어서도 본받을 점이 참 많은 분이셨는데 이 분은 우선 혼주에 대해 과분할 정도의 칭찬과 홍보를 해 주신다. 그리고 신랑-신부에 대해서도 갖가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또 본인 스스로도 대학교 총장, 병원장, 장관 등을 두루 역임하셨고 사회적 명망이 매우 높으시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렇게 많은 주례 부탁이 들어왔을 것이다. 같은 대학에는 이 분 정도는 아니지만 100쌍이 넘는 신혼부부의 주례를 하신 명예교수님도 여럿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주례를 많이 한 편에 속한다고들 하지만 그 정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결혼식에 주례를 모시지 않고 가족 위주로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0여 년 전 쯤 부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당시 박사학위 과정에 있던 제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인사를 왔는데 뭔가 쭈빗쭈빗 하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지도교수님을 주례로 모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장 총애하던 애제자라서 조금 섭섭한 느낌은 있었지만 막상 결혼식에 참석해보니 너무나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례 없이 진행하는 결혼식이었는데 신부 아버님이 목사님이라 실제로 주례 역할을 하셨고 훌륭한 덕담을 하시면서 결혼식을 잘 이끌어 주셨으며, 나는 그 분의 주례사에서도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그 후 이런저런 결혼식에 참석해 보았지만 주례를 모시고 하는 결혼식은 교회나 성당에서 진행하는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에 주례가 했던 역할의 상당 부분은 사회자가 대신하고 있었고, 주례사는 신랑신부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큰아버지 등 가까운 가족들이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얼마 전 참석했던 한 결혼식에서는 양가 부모가 차례로 덕담을 해 주는 것을 보았다. 먼저 신랑 아버지가 신랑-신부에게 멋진 덕담을 해 준 다음 곧바로 신부 아버지가 따뜻한 덕담을 이어가는 흐뭇한 광경이었는데 무척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졌다.

또 하나 달라진 결혼식 풍속도가 있다. 결혼식 행사 중 중요한 한 부분이었던 폐백 의식이 거의 사라져간다는 점이다. 전에는 신랑신부가 하객을 모시고 진행하는 공식적인 예식이 끝난 직후 곧바로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실로 들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 부모의 형제, 가까운 친척들(주로 신랑 측)을 모시고 전통식으로 별도의 인사를 드렸다. 신부는 볼과 얼굴에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큰 절을 받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되실 분과 일가친척들은 며느리 치마폭을 넓게 펴서 밤이야 대추야 하는 과실과 열매를 던져주면서 아들을 낳아라 딸을 낳아라 주문을 하기도 했다. 현대식 결혼식과 전통식 결혼식을 겸해서 진행하는 셈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폐백 의식을 보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결혼식 풍경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나라별로 또 종족이나 종교, 종파에 따라서도 매우 다양한 것 같다. 나는 라오스의 결혼식을 여러 차례 볼 기회가 있었다. 라오스에는 수도 비엔티안을 제외하면 우리처럼 시설을 잘 갖춘 결혼식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방 도시에서는 마을 어귀의 작은 도로나 광장에 천막과 휘장을 치고 흰 천으로 의자를 둘러싸서 수십 개 정도 놓으면 그게 그대로 결혼식장이 된다. 넓은 야외 식당을 빌려 예식장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결혼식 전후에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풍악을 거의 하루 종일 울려댄다는 점이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마이크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부근 여관에 묵으면서 일 나가려고 잠시 대기 중이던 우리 일행은 이 노래 소리가 매우 흥겨워 한참을 즐겁게 듣곤 했던 흐뭇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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