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공의’ 의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과 노조결성의 함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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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전공의’ 의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과 노조결성의 함수 관계
  • 김완배
  • 승인 2006.04.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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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치러진 의협선거를 계기로 그동안 잠복기에 접어들었던 전공의 노조설립 문제가 다시금 가시화되고 있다. 의협 회장 당선자의 전공의 노조설립 지지 및 지원 입장에 탄력을 받은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이 혁)는, 서울의 주요 대학병원과 전국 시도지역의 국?공립 병원을 중심으로, 4월중 노조가입원서를 배포하는 등 본격적인 추진에 나서 5월에는 전공의 노조를 공식출범 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전공의 문제는 의료계내의 뜨거운 감자로,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가 점증되면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두고 노조설립의 문제로 비화되어 왔다. 최근 몇 년간 전공의협의회 회장 선거에서는 노조설립 문제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어왔으며, 지난달 끝난 의협회장 선거에서도 8명의 후보 모두가 전공의 노조설립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여 병원계를 당혹스럽게 한바 있다.

이에 따라 병원협회는 서둘러 전공의협의회와의 간담회를 통해 몇 가지 처우개선방안을 제시하였으나 전공의 측은 원론적인 수준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조설립 방침에는 추호도 변화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렇게 전공의 노조문제가 전공의는 물론 의사협회, 병원협회를 아우르면서 의료계의 쟁점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면 다음의 몇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째 ‘전공의’의 위상변화이다.

전공의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제도 도입에 따른 의권쟁취 투쟁기를 겪으면서 의료계 내에서 보다 분명한 위상을 부여 받았다. 의료계의 의권투쟁을 사실상 주도하면서 존재가치를 확대하고 의협의 핵심조직으로 부상하면서 전공의 협의회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이때부터 전공의 협의회는 본격적으로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 및 처우개선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전공의 협의회 지도부를 중심으로 노조 설립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둘째, 전공의의 수련환경, 근무시간, 임금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공의는 병원의 직원으로서의 신분과 수련과정에 있는 피교육생으로서의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직원으로서도 제대로 된 처우를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생과 같은 피교육생이라는 신분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물론 수련병원에 따라 조금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주당 100시간에 달하는 과도한 근무시간과 의사고시를 패스했음에도 평균연봉이 2000만원 안 팍인 임금체계, 밤낮없이 일하면서 학습해야하는 여건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련환경은 전공의 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의 시각에서도 시급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셋째, 수련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협회와 정부당국의 현실 인식의 부족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열악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문제에 대해 수련환경의 지도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병원협회의 대처가 미진했다는 의견이고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의 안일한 대처가 또다시 문제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2004년 전공의 노조설립추진을 경험한 병원협회로서는 당시 약속했던 전공의의 처우개선과 관련 전공의 측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근무환경개선과 수련의 질 향상에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냈어야 했다.

일의 성격상 뚜렷한 성과는 다소 미진하더라도 전공의 측과 함께 단계적 개선방안에 대한 숙의를 통해 로드맵을 확정함으로써 조직내부의 문제로 체제내화 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정부 및 대국회 활동에 체계적인 힘을 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국?공립병원으로 제한된 전공의 수련보조수당을 사립대병원을 포함한 전 수련병원으로 확대하는 등의 몇몇 조치는 성과를 거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조직시스템 상 의견반영의 통로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인식의 기초를 마련했더라면, 작금의 현실에서 전공의의 분출되는 요구를 그저 삭히라고만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전공의 노조설립문제는 본격적인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전공의 자체의 선택에 달려있다.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불철저한 의견반영체계를 개편하고 보다 합리적이며 실제적인 협의체계를 마련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는 1만 6천여 전공의의 선택이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공의는 노조설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고 보면 결국 문제의 핵심은 “노조설립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는 보다 효과적인 방식의 선택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전공의 문제의 핵심이 열악한 수련환경개선에 있다면 현재 전공의 협의회가 추진 중인 노조설립은 과연 유용한 방식인지 다시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전공의의 신분 특성을 고려할 때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전공의 노조는 기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첫째, 피고용자 겸 피교육자라는 일반적 등식에 기초한 전공의의 정체성은 노동자로서의 개념규정 보다는 수련 받는 피교육자로서의 신분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적 문제해결은 필요하지만 노조가입활동을 통한 해결에는 일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일 것이다.

둘째, 수련 받는 피교육자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자체는 성립되지도 않으며, 한시적 신분의 근로자역할에 모든 것을 걸을 이유는 없다. 전공의는 수련과정을 통한 전문의라는 목적 성취가 당면한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셋째,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대립적 노사관계의 단면은 사실상 힘의 관계에 의한 문제해결에 직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협상은 곧잘 파업과 태업 등 노동쟁의를 수반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전공의라는 신분특성상 이러한 노동쟁의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넷째,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 단체협상을 통한 협약은 노동법에 기초하건데 수련 받는 피교육자에 대한 일반적 예외를 인정키 어렵다. 따라서 수련 과정의 교육시간, 수련기간, 전문의 시험 제도, 군대문제 등 예상하기 어려운 난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노조설립을 통한 문제해결은 결국 전공의의 선택의 몫이다. 하지만 결코 녹녹치 않은 여러 가지 난제를 가지고 있다. 병원계로 본다면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병원환경에서 보건의료노조와는 별개로 이제는 의료인 신분의 노조까지 설립된다면 병원경영의 측면에서는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심각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전공의 문제는 의료계내의 일반적 관심의 차원을 벗어나 이제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적 사안이 되었다. 다만 문제해결의 방식에 있어 조급성이나 후안무치한 대립방식으로 점철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전공의에 대한 일반적 인식의 기저에서 벗어나 병원의 공동진료팀으로서의 존재가치 부여와 그에 상응하는 처우 개선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병원협회는 산하 회원사인 병원의 소속 직원으로서 전공의에 대한 관계뿐만 아니라 전공의의 T/O 배정과 병원신임평가를 통해 수련과정을 실제 지도?감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병협 차원의 수련환경 개선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한 전공의 처우개선 요구에 대해 보다 분명한 실천로드맵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을 탓할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전공의 문제는 병원협회를 비롯한 전체 의료계의 현실적 사안인 만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모색에 노력해야 하며, 정부 또한 전공의의 처우개선과 수련환경 개선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여야할 것이다. 전공의의 문제 해결은 결국 병원을 찾는 의료수요자인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강화와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병원장과 전공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노사관계로 변질되는 것은 분명 당사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또한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하여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는 만큼 모든 의료인의 지혜가 필요한 대목으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2006년 4월 5일

사단법인 대한병원협회 경기도병원회 회장 백 성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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