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감정노동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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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감정노동자의 눈물
  • 병원신문
  • 승인 2018.01.19 13:31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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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서울대학교병원 전 간호과장
▲ 김영미 전 간호과장
작년 여름, 퇴근 무렵이었다.

외래수간호사가 다급하게 보고할 게 있다고 왔다. 외래진료실에 근무하는 직원(보조원, 이하 직원)이 사내용 메신저 대화창에 환자에 대해 ‘미친x’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 환자한테 들켜서 진료 중 난리가 났단다. 난감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환자는 얼마나 화가 났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직원은 이미 야단을 맞을 만큼 맞았다고 했다.

성실하고 착해서 동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환자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표현을 쓰다니 의외였다.

2016년 7월 어느 날, 그 환자가 예약한 두 시간 전에 진료준비실로 와서, 지방에 가야 하니 진료를 빨리 봐달라고 관련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예정된 다른 환자들의 진료가 지연되자, 그 환자는 진료실 출입문 앞에서 팔짱을 끼고 직원을 지켜보면서 빨리 진료를 보게 해달라고 계속 채근하였다. 진료가 지연되니 환자들의 불만은 많아지고 모든 환자가 전광판을 응시하며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어서 중간에 끼워 넣기가 어려웠다.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게 된 환자는 담당의사에게 “일찍 와서 부탁했는데 이제야 보게 됐다.”며 비꼬는 말투로 불평을 했다. 진료실뿐만 아니라 진료준비실(진료실 옆방)에 가서도 관련 직원들에게도 재촉한 상태여서 다른 직원들도 그 환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한 달 후, 그 환자가 검사 결과확인 차 진료를 보러 왔다. 지난번에 진료를 늦게 봐줘서 서둘러 지방을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모든 책임이 직원에게 있다는 식으로 담당의사에게 직원을 비난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PA(의사보조)가 종전에 진료시간 문제로 소란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직원 간 일대일로 대화하는 메신저 대화창에 “아, 그때 그분”이라고 쓰자 직원은 “알아 그 미친x”이라는 답을 남겼다. 환자는 PA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다 대화창의 “미친x”이라는 표현을 보자 본인에 대해 쓴 것이라는 강한 의심으로 누가 쓴 거냐고 PA를 다그쳤다. 건너편에 있던 직원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사과를 했고, 진료교수도 “이렇게 사과를 하는데 좀 봐주시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자는 마스크를 쓴 채 고객 상담실 담당자를 데리고 와서 직원을 다그쳤다. 직원은 많은 환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자는 대화창 내용을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휴대폰을 꺼냈으나 이미 내용을 삭제한 뒤였다. 보호자는 간호사실에 전화해 잘못을 시인했다는 자료로 쓰고자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의 고객지원팀에 불만을 제기하였고 수간호사와 나는 송구한 마음에 진땀을 흘리며 답변을 썼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욕설을 쓰는 건 잘못이고,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으며 앞으로 직원교육을 잘하겠다고 했다.

고객 불편에 대한 회신서를 보낸 후 고객지원팀 담당자가 추후 인사차 보호자한테 전화를 하자 “이제부터는 직접 연락할 일이 없고 법무법인의 변호사가 응대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수간호사가 직원이 용서를 빌 기회를 달라고 환자에게 여러 번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사과를 받지 않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안한 감정은 뒤로하고 직원을 보호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9월, 환자 측에서 직원을 모욕죄로 고소하여 경찰서에서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야 한다니 직원은 물론 관리자인 수간호사와 나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직원은 울고 다녔고,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오히려 일반 인들은 이게 모욕죄가 성립 되냐고 의아해했다. 수간호사는 실제로 혈압이 올랐고 나도 머리가 터질 듯했다.

10월, 경찰서에 간 직원은 진술서를 쓰는 내내 울었다고 했다. 동행한 법무팀장과 수간호사더러 나가있으라고 경찰관이 강하게 말하는데도 “직원이 너무 불안해하니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 함께 있어줘야 한다.”고 법무팀장이 사정하며 옆에서 아버지처럼 도와줬다고 했다. 감동이었다. 수간호사는 내게 수시로 보고를 해주었다. 이후 경찰에서 양측에 합의 의사를 물었으나 환자 측에서 거부하여 조정위원회는 무산되었다고 했다.

12월 첫 주말에 지방으로 가던 중 수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검사가 약식기소하여 벌금형(3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합의금으로 500-600만 원을 예상하다가 30만원이라는 금액과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직원과 수간호사는 기뻐했다. 1년에 500만 원을 모으는 것도 힘든 직원은 전과기록이 남더라도 벌금액이 적음에 안도했다. 게다가 벌금형은 2년이 지나면 실효된다는 법무팀의 설명에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변호사가 맡았으면 무죄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미련이 남았다. 주말 내내 이 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형의 실효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벌금형은 2년이 지나면 실효되어 범죄경력조회(전과조회)를 해도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는 법조문은 있으나 벌금액에 상관없이 전과기록은 평생 남는다고 한다. 취업 시 불이익을 받거나 이민 관련 외국 정부에서 전과기록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사례와 함께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인데 전과자로 살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또한 환자위해사건 발생 시 과실 치상이나 치사, 주의의무위반 등 형사 건으로 입건되면 의료진이 100 퍼센트 잘못해도 병원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준다. 이 사건은 상황이 다르지만 진료 중에 일어난 일이니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 오히려 직원이 피해자일 수도 있으니 법무팀에서 정식재판을 맡아 달라.”고 법무팀에 메일을 보냈다.

나는 병원집행부의 일원인 암병원장과 진료부원장을 만나 읍소했다. 직원복지 차원에서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 법무팀 변호사가 맡기로 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게 되었다.

그 사이 환자 측에서는 약식명령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용자 책임을 물어 병원과 직원에게 500만 원의 위로금과 소송비용을 내라고 했다.

2017년 4월 14일, 간호과장으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 비통한 기분으로 짐정리하던 중 법무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모욕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고 했다. 순간 “대한민국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내가 처한 우울한 상황에서도 직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영원히 기억될 날이었다.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경우에 성립하므로, 1:1 사내메신저로 대화한 부분은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고 변호사가 변론하였고, 판사는 전후 상황을 보았을 때 공연성이 없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병원 메신저로 환자 흉본(욕한) 간호조무사 무죄’라는 소제목으로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직원보다는 환자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사과 받고 끝내면 되지 소송까지 가느냐. 갑질이다.’라고.

처음엔 약식기소를 한 검사가 원망스러웠는데 환자 측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만 봤을 땐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술서를 쓸 때 적극적으로 항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1심의 무죄 판결에 불복하여 검사가 항소했다.

2심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법무팀에서 직접 변론 대신 조언만 하겠다고 했다. 변호사법에서 사내변호사가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사건에 제한이 있어 형평성 때문이라고. 내 마음은 급해졌다. “애써 얻은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힐 수도 있고, 그 결과가 민사소송 금액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2심도 직접 맡아 달라.”고 법무팀에 사정하는 메일을 보냈다. 결국 법무팀 변호사가 맡기로 했다.

6월, 외국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참석 중 법무팀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형사소송의 무죄 판결과 별개로, 민사소송에서 위로금 차원의 조정금액이 50만 원으로 제시되었으며 비용은 직원이 내야한다고 했다. 나는 만사를 제치고 답을 썼다. “직원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미안해서 무조건 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개인적으로 고통을 받을 만큼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렵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잘 도와줬는데 50만원 때문에 야박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방은 직원과 병원 모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으니, 배상액은 병원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결재를 올려봐 달라.”고.

7월, 2심의 무죄 판결 소식과 함께 민사소송 위로금도 병원에서 지급했다고 연락받았다. 결국, 검사가 상고하여 대법원까지 갔다. 보통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힌 의료사고 소송사례를 들며 끝까지 법무팀 변호사가 맡게 해달라고 내가 먼저 법무팀에 메일을 보냈다. 이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줬다.

2017년 9월 21일,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다. 피고인은 무죄.

직원은 늘 미안해하며 포기하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끌고 왔다. 대법원 판결을 끝으로 내게 감사하다며 인사 왔을 때 물어봤다. 평소에도 ‘미친x’이란 말을 쓰냐고. 진짜 그런 말은 처음 썼노라고 했다. 그 말에 위안이 되었다.

기사의 댓글에서 보듯 직원의 사과로 끝낼 일인데 감정노동자, 약자라는 이유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직원은 병원에서 지켜주고, 고객은 성숙한, 그런 세상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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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2018-01-23 09:49:04
글을 읽고 정말 각처에 감정노동자들이 청원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약자편에서 옆에서 힘을 주고 , 도와주신 기고자님 존경스럽습니다. 돈많은 사람은 사람써서 갑질을 하는거 처럼 밖에 안보이는 내용이네요. 상스러운 소리한 사람 모두 모욕죄로 고발하는 사회라면 사회 자체가 존립할 수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성숙한 인격이 모여 성숙한 사회가 됩니다.

임효민 2018-01-23 10:26:27
서비스란 그저 무조건 조아리고 숙이는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관리자 분들의 현명하고 빠른 대처로 직원분의 다친 마음도 보듬어주시고, 무엇보다 무고하고 당할 수 있었던 불명예를 벗어나신 것 너무나 감동적이고 인상깊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한숙 2018-01-23 10:33:07
환자, 보호자도 나름의 입장과 억울함이 있겠지만, 원칙은 지키셨어야지요... 예약된 시간보다 빠른 진료를 요구하는 것은 병원 직원 뿐만 아니라 뒤에서 기다리는 많은 다른 환자, 보호자들에게 불합리를 요구한 것이고, 본인 사정이 급해 발생한 사고까지 직원 탓을 하며 화풀이를 하는 것은 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행태입니다. 힘없는 직원을 위해 애써주신 과장님과 법무팀의 노력의 결과는 당연지사, 사필귀정입니다~^^

박세연 2018-01-23 11:41:38
사정에 따라 배려를 해 드리려고 하는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원칙을 고지하면 화를 내거나 비꼬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늘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을 건져주신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고 존경스럽습니다.

이은경 2018-01-23 11:50:37
감정노동자로써 매일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저런 일이 생기면 너무나 허무하고 기운이 빠집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의식이 개선되길 바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끝까지 당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과장님의 노력 및 마음도 정말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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