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마련 결국 국민의 몫…의료민영화 정책 멈춰야
보건복지부 최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계획 안에 국민은 없다’며 정면 비판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정해진 보장성 강화, 재정 전망 및 운영, 정보의 관리 등의 항목에서 건강보험의 가입자인 국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건보노조는 2월 7일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종합계획은 돈으로 우리나라 의료체계 문제점들을 해결하겠다는 의미가 담겼지만, 재원 마련에 있어서는 어떤 대안을 찾아볼 수 없는 계획이라고 꼬집었다.
도리어 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계획이라는 것인데, 그 책임은 ‘국민에게 전가하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 건보노조다.
아래는 건보노조가 발표한 성명의 전문이다.
건보노조가 지적한 부분은 첫 번째로 보장성 강화 영역이다.
건보노조는 국민 전체의 건강보험 보장률보다는 진료과목별, 지역별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2021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4.5%, 본인부담률은 19.9%, 비급여가 15.6%였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보장률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며, 본인부담과 비급여를 합친 35.5%는 큰 부담이 된다.
2021년 기준 약 3,990만 명의 국민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이유는 이 부담을 줄여보고자 한 것인데, 2021년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중 정부·의무가입제도의 비중이 77.2%인 것에 반해 우리나라는 62.4%였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보장률이 여전히 상당히 낮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평균수치가 아닌 진료과목별로 여전히 국민에게 부담이 되는 항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치과의원의 보장률은 33.2%, 치과병원은 27.9%였는데, 낮은 보장률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개의 치아를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 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라는 것.
건강보험 보장률 산출 대상에서 벗어나 전체 경상의료비를 보면 국민의 부담은 더 크다.
경상의료비 중 건강·산재·자동차 보험 등의 의무 가입비중은 62.4%이다.
그 외는 국민이 직접 부담하거나 별도의 임의보험 가입을 통해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된 간병비는 기존의 건강보험 보장률 산출 시 애초에 고려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 보장률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는 항목이며, 이런 항목들이 추가하여 국민의 실질 삶을 대변하는 보장률 지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는 보장성 확대는 전혀 없는 국민을 위한 정책은 실종된 계획이다.
두 번째는 재정 전망 및 운영 영역이다.
우리나라 민간의료 비중은 기관 수 기준 94.8%, 병상 수 기준 91.2%, 의사인력 기준 89.8%이다.
이런 비중 외에도 우리나라의 공급자들은 강력한 세력화를 통해 대내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을 상대로 정부나 보험자의 구매력을 강화해 전달체계를 변화시킬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차 종합계획에는 필수의료 공급과 의료격차 해소라는 내용으로 민간 중심의 공급 영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리고 분절적으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가 환자를 중심으로 포괄적으로 제공되도록 유도하는 계획도 국민에게는 중요한 변화이다.
다만 돈으로 공급자를 움직이겠다는 것인 만큼 건강보험 재정 전망과 운영 계획의 촘촘함이 요구되고, 그 성공 또한 담보돼야 한다.
우선 수가 인상의 유인책이다.
행위에 대해서는 획일적 수가 인상 방식에서 벗어나 저평가 항목을 집중적으로 인상하고, 난이도·위험도·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추가로 공공정책수가를 지급한다.
하지만 계획에는 어디에도 공공성은 없다.
이에 더해 상대가치점수 조정 주기를 5~7년에서 2년으로 줄여 한번 인상으로 부족하면 더 올려주겠다고 한다.
정부는 현재의 공급자 분포 상태를 ‘시장실패’라고 규정했다.
제때 적정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으로서는 동의하겠지만 수익을 고려하는 공급자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고 최적의 결과물이다.
이랬던 그들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이 제공돼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5년 동안 10조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어느 정도의 변화가 언제쯤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목표치도, 일정도 없다.
그저 건강보험 재정을 지속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다음 문제는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지불제도 개편이다.
흔히 업무 결과에 대한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제도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업무 동력이 된다.
행위별 수가제와 비급여진료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환자를 보려던 것에서 개개인의 상태를 지속 관리해 필요 시 타 병원과 협업하는 불편한 과정을 누가 흔쾌히 수용할지 의문스럽다.
현재의 정부 방침대로라면 이 또한 원하는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하면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성과로 평가해서 돈으로 주겠다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 정책으로써 사회연대로 모든 국민이 똑같이 치료받고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을 목표로 하는 건강보험과 맞지도 않다.
계약, 평가, 성과급 지급이라는 미국식 의료 체계 운영 방식이다.
정부는 수가 인상, 성과 보상 등 지출이 늘어나더라도 재정 효율화 추진, 적정 보험료율 인상 및 국고지원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2026년부터 적자이지만 그 규모 등을 관리해 2028년 말에도 28.4조(2.7개월 지급가능액)의 적립금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보험료율도 1.49% 인상을 전제로 하였기에 8%의 보험료 상한선 상향 논의도 굳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한다.
설사 예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단기보험의 성격상 보험료 수입과 지출을 상황에 따라 관리할 것이기에 재정 안정성에 관한 우려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왜 국민에게는 새로운 족쇄를 채우려 하는가?
외래 365회 초과 시 본인부담금 인상, 산정특례 본인부담 지원 방식 변경, 의료이용 알림 서비스 등 국민이 의료이용량과 비용부담에 대해서 지속해서 신경을 쓰고 자제하라는 것이다.
아프고 힘든 국민이 ‘당신은 올해 몇 회 진료를 받았고, 얼마만큼의 건강보험료를 사용했다’는 감시까지 받는 서러움을 느끼게 해야 할 정도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이번 계획에는 재정지출은 있으나 재원마련 대책은 전무하고 결국, 그 책임은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밖에 없다.
세 번째는 개인건강정보의 관리 영역이다.
국민의 의료이용 정보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의 소중한 정보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보안장치와 제도 도입 및 직원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관련된 위법행위에는 강력한 징계를 내린다.
과거 보험사에서 정보 제공을 요구했을 때도 수차례 거부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2차 종합계획에는 그러한 정보를 개방하겠다는 매우 우려스러운 내용이 담겨있다.
다른 정보를 사용하더라도 특정인을 식별할 수 없는 ‘익명 자료’ 형태의 자료만 반출할 수 있었으나 정부는 앞으로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가명 자료’ 반출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란 ‘생존하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주민등록번호 등에 의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용이하게 결합해 식별할 수 있는 것 포함)’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가명 정보’는 국민의 소중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설사 그 목적이 공익적·과학적 연구의 경우로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정보 주체인 국민 개개인의 동의 없이는 외부에 제공되면 안 된다.
보험사가 개인의 의료이용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반대로 국민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건 당연하고, 민감한 의료정보의 유출은 한 개인의 삶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다양한 SNS 활동, 위치 공유 등이 일상화된 요즘에는 아주 작은 정보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어떻게 개인의 삶을 망치는지 여러 사건을 통해서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개인정보를 더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민간자본에 국민건강정보를 팔아넘기는 후안무치(厚顔無恥) 행위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장 멈춰야 한다.
네 번째는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2차 종합계획에는 정책 여건 분석이나 추진 방향에 의료분야에서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내용이 담겨있다.
우선 의료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의료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제도로 인해서 신속히 도입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의 등장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같은 정보통신기술 기반 서비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혁신의료기기의 통합심사와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연장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혁신의료기기의 신속 시장진입'은 건강보험의 관심사가 될 수 없는 기업의 민원 사항일 뿐이다.
식약처의 인‧허가 심사,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안전성·유효성 평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여부 결정 등 일련의 과정은 새로운 의료기기의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등을 판단하는 순차적으로 정해진 절차임에도 그것을 좀 더 쉽게 마치거나 건너뛰는 방안을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통합심사·평가 대상을 확대하고, 신의료기술 평가유예의 대상 확대와 유예기간 연장을 ‘개선’이라고 칭하고 있다.
비침습적 기술을 대상으로 제한한다고 하지만 왜 과거에는 반드시 필요했던 절차를 지금은 건너뛰려 하는가?
혁신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진입에 대한 현장 요구는 당연히 국민으로부터가 아닌 관련 산업체로부터 일 것이다.
이게 바로 현 정부의 기업과 자본을 위한 대표적인 의료민영화 정책 아니고 무엇인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기업과 자본을 위한 정책일 뿐이다.
건강보험은 사회 연대와 모든 국민이 똑같이 대우받는 보편성을 가진 우리의 소중한 사회보험제도다.
하지만 이번 종합계획에서는 그 소중한 사회적 자산을 망가뜨리려 한다.
특정 지역과 진료과에 의사가 부족함에도 공급자들의 사회적 책무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던 의료인들의 모습은 없고 오로지 돈으로 조종당하는 의료기술자만 있을 뿐이다.
또한 건강보험의 주인인 국민을 대하는 인식 또한 매우 무례하다.
소수의 특이 사례를 근거로 국민 전체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 소수의 국민조차도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의 모습도 없다.
국민은 그저 재정 효율화의 대상일 뿐이며, 더 나아가 경제적 성과를 위해 이용해도 문제없는 자원으로 보는 듯하다.
건강보험의 주인은 가입자인 국민임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은 보험자의 노동조합으로서 이후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면밀히 분석하여 세부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정부에 무책임한 재정지출 계획에 맞서 국가책임 강화를 필두로 국민을 위한 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