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조, 비대면 진료 사회적 원점 재논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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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노조, 비대면 진료 사회적 원점 재논의 요구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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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강화, 개인정보 보호, 건강보험 재정 모두 고려 안해
재정건정성 제고 현 정부 노선과 배치…법제화 중단 촉구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비대면 진료의 원점 재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안전성 강화, 개인정보 보호, 건강보험 재정 등을 모두 고려·검증하지 않은 상태로 법 개정을 추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건보노조는 7월 31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의 의료접근성과 편리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 그 배경에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플랫폼업체들의 난입 등 자본 세력의 이익추구를 보장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우리나라 보편적 보건의료체계의 장점은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차선책으로 2020년 12월부터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총 1,419만 명이 3,786만 건의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으며, 정부는 진료를 받은 다수가 그에 만족했다는 통계치를 제시했다.

지난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하향됨에 따라 비대면 진료는 종료됐지만, 이런 수치를 근거로 정부는 의료접근성 및 편의성 향상이라는 목적을 내세워 비대 면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게 건보노조의 지적이다.

우선, 일반적으로 시범사업은 현행법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는 것이 타당한데도 불구하고 의료법 제34조, 약사법 제23조 2항과 상충되는 사업을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해 시작한 부분이다.

시범사업 운영 2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의견수렴과 심의기구의 운영은 없으며 오히려 의료법을 개정해 시범사업인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 건보노조다.

게다가 시범사업을 건강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는 것 외에는 다양한 관계자들의 별다른 의견수렴과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보고 당일에도 가입자 대표인 노동계 위원들의 회의장 출입까지 봉쇄해 그 정당성마저 약화시켰다는 게 건보노조의 비판이다.

건보노조는 “법적 정당성의 한계와 진행 과정의 문제점을 안고 시작된 만큼, 국민의 건강 및 개인정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심도 있게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했는지 몇 가지 사안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문제

건보노조는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온 시기에 비대면 진료로 인한 오진 가능성을 왜 감수해야 하는지 되물었다.

약물 오남용을 우려해 약국은 대면 수령을 원칙으로 하면서 그보다 우선해 처방의 정확성을 높일 대면 진료를 복약지도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의료계도 의료는 조금만 어긋나도 환자의 생명에 직결될 수 있는 사안으로 그만큼 안정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분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을 우선해 그 안전성에 대한 검증과 확보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의료사고 발생 시 그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다.

건보노조는 “현행 체계에서는 의사는 진료와 처방, 약사는 약품 관리·취급 및 조제, 제약사는 약품 자체, 정부는 약품 허가 과정 등의 책임을 갖는다”며 “향후에는 이에 더해 플랫폼업체, IT기기 업체, 통신망 서비스 공급 업체 등 새로운 관련자들이 추가되고 그만큼 문제 발생 시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대한 규명이 더 어려워지게 되면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 개인정보 보호 및 플랫폼업체 관리·감독 문제

현재 진행 중인 비대면 진료는 공급자인 의료기관과 가입자인 환자를 플랫폼업체가 자체 개발한 앱이나 홈페이지 서비스를 통해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진료와 처방 데이터는 플랫폼업체에게 제공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개인의 건강 및 진료 정보를 보호하기보다는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게 건보노조의 지적이다.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면 이를 활용해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는 한 플랫폼업체 대표의 발언을 통해 비대면 진료에 뛰어든 업체들이 가진 사업확장의 방향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

건보노조는 “이러한 플랫폼업체들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 문제는 단순 기우가 아니다”며 “지난 5월 10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주민등록번호 가림 처리 소홀 등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업체에 과태료와 시정조치를 의결했다”고 말했다.

건보노조는 이어 “다행스럽게도 진료 내용 등 의료정보는 별도의 전자의무기록시스템에 입력돼 플랫폼에 수집·저장되지 않았지만, 접속기록·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의 보호를 위한 안전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못했다”며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솜방망이 처벌 외에 별다른 관리·감독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한 민감한 진료 내역 정보 유출의 위험성은 고스란히 국민이 안고 갈 부담이 된다”고 부언했다.

■ 건강보험 재정에의 악영향 문제

현재 비대면 진료의 시범사업 수가는 기존 진찰료(100%)와 시범사업 관리료(30%)로 구성돼 일반 진찰료의 130%로 책정돼 있다.

일반적으로 수가는 의료행위에 소요되는 업무량, 인력·시설·장비 등의 자원의 양, 해당 진료행위의 위험도 및 발생빈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정된다.

하지만 시범사업 수가는 일부 업무량이 늘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방문 환자의 감소로 필요한 자원의 양은 감소하고 비대면 허용 진료 대상은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제한했기에 위험도 또한 낮을 것임에도 오히려 30% 가산까지 했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수가를 책정한 것인지 의구심을 제기한 건보노조다.

특히, 현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를 건강보험 정책의 핵심 모토로 내세워 MRI의 급여 인정 범위를 축소하고 극소수의 병원 다수 이용자는 과다이용자라는 딱지를 붙여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려 하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에는 불필요한 보상을 더 해줘 건강보험의 재정 건정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을 비판했다.

다시 말해 현재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대면 진료 수가를 대면 진료보다 낮게 잡거나 동일하게 하는 것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30% 수가 가산은 과다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건보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130%의 수가는 건보공단 부담금도 늘리지만 동시에 본인부담금도 30% 늘어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보험료 납부는 능력별 차등이 있으되 진료에 있어서는 누구나 동일한 혜택을 받는 보편적 건강보험이지만, 이제는 돈을 더 내야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는 선별적인 특성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비대면 진료의 다수 이용자인 고령의 만성질환자 입장에서 의사를 만나지 못함에도 진료비를 더 내야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주기적으로 자주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일부 국민들은 ‘의료 이용 비용 증가’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문제점도 건보노조의 우려사항이다.

건보노조는 “코로나19 시기에 비대면 진료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선이었다고 생각되나 현재 비대면 진료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가입자인 국민이나 공급자인 의료계가 아닌 자신들의 이윤 추구와 사업 활성화를 요구하는 플랫폼업체와 그들을 지원하는 정부로부터만 들려온다”며 “대면을 최소화해야 할 특수한 상황에서 얻은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는 정상화된 일상 속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차분하고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한번 사용했다고 해서 지속하거나 무조건 확대하려는 노력은 상황이 바뀐 지금 시기에는 오히려 국민에게 위험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건보노조는 이번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는 의료민영화 시도의 한 종류라고 명명했다.

비대면 진료 활성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플랫폼사업은 의료민영화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건보노조는 “국민의 진료 데이터를 집적해 민간보험사가 활용하도록 허용하는‘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라는 의료민영화 정책과 마찬가지로 비대면 진료도 진료데이터를 활용한 플랫폼업체의 이윤 추구가 명백한 또 하나의 의료민영화 정책”이라며 “이 같은 이유로 건보노조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들이 진료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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