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정책, 병원계가 떠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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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정책, 병원계가 떠안지 않기를
  • 정은주
  • 승인 2005.12.2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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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계 2005년 결산 및 2006년 전망
‘다사다난’이란 말을 실감케 하듯, 2005년은 의료계에 있어서도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한해였다. 올해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20만명의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새로 등록되고 고가의 의료장비인 MRI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이뤄졌으며, 건강보험 재정흑자를 이유로 암이나 개심술, 개두술과 같은 중증질환에 환자가 내야하는 본인부담금을 낮춰 건강보험 역사상 최대의 보장성 강화를 실현했다.

내년에는 식대에 대해 보험급여에 나서는 한편, 초음파에도 보험적용을 하기 위한 실무작업이 한창이다. 서민들을 위해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크고 작은 병원들을 비롯한 의료계의 형편은 어떤가? 의료급여 진료비 중 받지 못한 돈이 4천억원을 넘었고 지금까지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해 건강보험으로 인한 수익손실분을 비급여나 의료외수익으로 보전해 왔으나 비급여 부분의 급여화로 이마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병원경영에 보탬을 줘오던 장례식장은 법원의 법리적인 판단으로 문을 닫아야만 할 위기에 처해있고 초기 병원시장을 형성하며 병원에 수익성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됐던 기능성 건강식품은 시작단계에서 좌초될 운명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원의 수익성을 높여주기 위해 건강보험 외에 수익사업을 허용하기 위해 최근 몇년동안 각종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관련부처간의 이견 등으로 제도개선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의료기관의 수익사업 허용에 관한 의료법 개정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이며, 여야의원들이 의료기관 경영난을 고려해 건강기능식품을 제외하곤 의료법인에 대해서도 장례식장업, 주차장업, 의료정보화 관련 사업 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 그나마 병원계에 위안이 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 올해 새롭게 발족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보건의료제도와 e-health 등 세부분과로 나눠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하고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그 일환으로 의료기관의 종별구분을 개선하고 의사의 프리랜서를 허용하는 한편 의료기관 자본참여 확대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이렇다할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종별구분이 개선될 경우 자칫하면 종합병원의 가산율도 깎일 전망이다. 정부는 종합병원을 없애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전문병원, 개방병원, 노인요양병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계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병원들이 많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정부 정책에 호응할 수 없는 병원들은 가산율에서 손해를 보고 개원가와 새로 탄생할 전문병원들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 나가야할 형편이다.

의료공급자와 가입자대표가 사상 처음으로 ‘계약’에 의해 2006년도 수가를 결정한 것도 올 한해 주요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복지부장관 고시를 거쳐 2%대 인상률을 거듭해온 것을 보면, 3%라는 마의 벽을 넘은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상당수 의료기관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저수가정책과 의료보장성 확대정책 속에서 의료공급자만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3.5% 인상안에 마냥 만족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2005년은 ‘병원계 내부경쟁’도 그 어느 해보다 과열된 해로 평가된다.
정부가 의료기관평가제도를 도입, 올해 초 평가결과가 발표되면서 사상 처음으로 정부에 의해 전국 의료기관이 서열화되는 경험을 맛봐야 했다. 수많은 비판과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는 발표됐고,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상당했다. 이제 의료기관은 외국의 우수병원과의 경쟁은 물론 의원-병원-대학병원 등 종별 구분도 없어졌고 병원 내부적으로도 모든 병원들이 경쟁의 대상이 됐다.

올해도 그렇지만 내년에도 병원계의 전망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정부의 각종 선심성 정책으로 의료계에는 고통분담만 호소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이는 수가정상화가 아닌 보장성 확대로만 연결되고 있다. 늘어난 보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더 많은 보험재정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러다 건강보험 재정이 견디지 못할 경우 의료계는 또다른 고통과 양보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이같은 징후는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예산처는 건강보험 재정부족을 우려, 포괄수가제를 카드로 내밀고 있어 건강보험재정안정화특별법 만료에 따른 후속 재정지원을 놓고 흥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지난 2002년 재정부족을 이유로 조정했던 야간 진찰료 가산 시간대를 환원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야간에 진찰을 거의 하지 않는 병원에 돌아오는 몫은 전체의 20% 수준에 불과해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문을 연 의료기관이 없어 응급실로 모이던 비응급 환자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갈 경우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2005년을 끝내며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더욱 우려되는 것은 내년이다. 올해 정부에서 정확한 계측없이 시행한 각종 선심성 정책으로 인한 재정부담을 의료계에서 모두 떠안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새해를 맞는 마음이 기쁘지만은 아닌 것 같아 황우석 교수 파문으로 우울해진 마음이 더 가라앉는 연말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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