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경감으로 보장성강화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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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비경감으로 보장성강화 가능(?)
  • 박현
  • 승인 2005.12.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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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장
정부의 "의료보장성" 강화정책으로 2005년 9월1일부터 암과 같은 중증환자 진료의 본인 부담이 10%로 낮아졌다. 또 6세 미만 소아의 입원시 본인부담금 전액 면제를 예고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고가검사에 대한 보험급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 거의 매일 보험급여 확대 방안이 발표되고 있다.

의료비의 본인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야기하고 있다.

첫째, 암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이들 환자들이 일단 입원하게 되면 퇴원을 거부하고 장기적으로 병상을 점유해 의료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영세환자들은 제대로 진료 받을 기회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보험급여의 범위는 넓혀 나가면서도 암 수술과 같은 필수의료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기술료 반영을 외면해 전공의들이 외과와 같은 필수분야의 수련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은 중소병원에서 더욱 심각해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을 가속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의료의 질" 개선에 대한 노력은 없이 환자들의 진료비용에 대한 보장성 강화에만 집착하는 의료정책은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환자에게는 의료자원을 과잉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반면, 그렇지 못한 환자에게는 의료자원의 고갈로 진료의 질이 저하될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 즉 의료이용의 형태를 "양극화"로 몰고 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첫째, 국민들이 어느 의료기관을 이용해도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둘째, 의료전달체계에서 의료기관별로 적절한 역할분담을 고려하는 등 의료의 "질"에 대한 보장성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 같은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무시한 접근은 또 하나의 "선심성" 의료정책으로 의료제도의 왜곡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의료비 본인부담경감 만으로 의료보장성 강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보장성 강화대책은 특히 중증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추진체계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어 개선이 요망된다.

▲문제점1)의료전달체계의 왜곡-3차 의료기관으로의 "쏠림현상"

-현재 우리의료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1,2,3차 의료기관간 중증도에 따라 역할분담을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못함으로써 3차 병원으로 환자들의 집중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도권의 대형병원에는 경증의 환자들까지도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중소병원 특히 지방병원에서는 환자가 없어 도산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고, 고속철도가 개통된 이래로는 해당지역의 환자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편 수도권의 대형병원은 외래환자가 1일 만명의 수준에 육박하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외래의 70%를 차지하는 등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형병원에서의 3분 진료를 더욱 악화시켜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

-고급의료에 대한 수요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터,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미국의 의료제도는 어느 의료기관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나(random access) 의료비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해 실질적인 의료기관 선택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가격은 환자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가격탄력도"를 높이는 일이 대학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인 처방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영국의 제도는 의료비용에 대해 국가가 보장을 하고 있는 반면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의료인에게 결정권을 부여해(managed access)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중에서 어느 의료기관이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면서도(미국) 의료비용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는(영국)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점2)소외계층 접근성 저하와 의료자원의 낭비-분배불균형

-중병환자에 대한 요양(care)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의료비용에 대한 보장성만 강화되면 요양대상의 환자들이 급성병상에서 장기입원하는 문제가 더욱 심화된다.

-수술을 받고 일정기간이 지나 회복되어 퇴원을 해야 하거나, 질병의 호전 가능성이 없어 단순 요양기관으로 이송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환자들이 큰 병원을 선호하고 있고 큰 병원이나 작은 병원이나 입원료가 별 차이가 없어 이송하도록 설득할 수 없다.

-예컨대 암환자의 경우 제대로 된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부족하여 급성기병상을 이용하면서 평생 사용하는 의료비의 절반이상을 임종전 2개월에 입원시설에서 사용한다는 현실은 의료자원이 부적절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언1)제대로 된 수가제공을 통한 의료의 "질"향상이 우선되어야

-정부의 의료비 본인부담 경감 대책은 의료행위의 질적 수준이 모든 의료기관에서 적절히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 의료기관 사이의 진료의 질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의료기관 사이의 진료의 질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도입된 본인부담금 감면 방안은 의료 과잉이용의 욕구를 가진 환자들로 하여금 비용에 대한 의식을 감소시켜 필요이상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정작 치료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배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의료에서는 "저수가 정책"으로 인한 의료의 질저하의 위험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소위 3D과의 인력부족 등은 저수가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며 이번 정부안과 관련해서도 원가이하의 중환자실 수가라든지, 현재까지 제대로 책정되어 있지 않은 암환자 수술수기에 대한 수가산정 등 필수의료에 대한 "저수가" 구조의 문제가 그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필수의료의 수가 정상화는 균형 있는 의학교육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의료의 질 보장의 첫 단계이다. 의료수가체계가 개선되어야 의료의 질 향상이 가능하며 의료의 질을 보장한 이후라야 의료보장성 강화가 의미 있다.

▲제언2)의료전달체계 개선 및 요양(Care)의 제도적 지원

-의료선진국에서는 각 의료전달체계상 의료기관들의 역할배분이 합리적으로 되어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각 의료체계상 접근자체에 제한을 두고 있으며 또한 2,3차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의학적으로 판단할 때 더 이상 3차 의료기관에 입원해서 급성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입원해 있는 경우, 강제퇴원 명령을 내리거나 보험급여를 중단할 수 있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의료재원의 낭비와 대기환자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어떠한가? 아무런 통제장치가 없다. 오히려 의사들이 퇴원명령을 내릴 경우 환자와 보호자들이 앙심을 품고 난동을 부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의료인들에게 의학적 판단에 근거한 의료접근 통제권이 부여되는 등 의료전달체계의 개선방안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치료(cure)와 요양(care)간 불균형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급성병상의 공급은 OECD 평균에 비해 과잉상태인 반면, 제대로 된 요양병상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급성기병상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의료자원낭비와 의료소외계층의 접근을 제약하는 장기입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를 대체할 만한 요양의료기관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맺음말

-정부정책은 정부가 결정한 사항의 구체적 집행자인 의료기관(현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도 정부는 의료의 보장성 강화라는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의료기관이 떠안는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의료의 보장성 확대방안을 내놓았다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의료전달체계의 왜곡으로 진료현장은 더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또한 현재 정부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급여확대 대상선정 역시 신중해야 한다. 필수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의료행위에 한해 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소외계층에서 흔하며 전염성질환인 결핵 등에 대한 투자에는 아직까지 정부가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성이 낮은 것은 암 등 주요 중증질환의 본인부담이 20%라서가 아니고(일본은 본인부담률을 30%로 유지하고 있다), 이상의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진료비 감면을 통한 의료보장성 확대를 꾀하는 것은 단지 "의료비 할인제도"로서 대형할인매장의 특별할인행사와 같은 일과성 행사로 결국 △좀더 접근성이 좋은 환자들이 고가신약을 싼값에 이용하는 것 △다국적 제약 등이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정책에 그쳐 의료양극화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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