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경 도입에 앞서 선의의 피해자부터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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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경 도입에 앞서 선의의 피해자부터 막아야
  • 오민호 기자
  • 승인 2019.10.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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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병원회 이필순 위원장, 조사과정에서 의료기관 폐업 속출
건보공단, ‘긴급성’과 ‘전문성’ 주장…의료기관 부당청구 수사대상 아냐

병원계가 불법개설기관(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방안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추진 중인 특별사법경찰권(이하 특사경) 도입에 경찰권의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10월2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가 여의도 태영 T아트홀에서 개최한 ‘불법개설기관 근절 방안’ 포럼에서 이필순 서울시병원회 윤리위원장<사진>은 “왜 사무장 병원의 가장 큰 피해 당사자인 의료계가 건보공단의 특사경 도입에 반대하는지 건보공단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운을 뗐다. 

사무장병원에 대한 단속은 꼭 필요하고 시급하지만 정작 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두고서는 공단이 제대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등으로 요양급여 비용이 지급 보류된 총 751개 요양기관 중 69개소(9.2%)가 재판을 통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 판명됐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가 요양급여비용 지급 보류 방침으로 소송기간 동안 요양기관 운영자체가 어려워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보상안으로 조사과정에서 지급이 보류했던 진료비에 대해 연2.1%의 이자를 주겠다는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사무장병원 조사가 아닌 부당청구 등으로 현지 조사만 받아도 의사들에게는 공포인데 공단직원들이 수사권까지 들고 흔들면 심각한 정신적 압박과 부담감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은 전무하고 무죄를 받은 당사자 입장에서 건보공단이 의료기관 문을 닫게 해놓고 사죄한들 이미 폐업 상태다”고 토로했다.

또한 최근 법원의 무죄판결을 근거로 의료법인 개설 의료기관에 사무장병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문제다. 의료법인을 비의료인이 주도해 운영했다는 이유로 많은 의료기관이 사무장병원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의료법인의 설립하가권자인 주무관청이 의료법인의 운영을 감시, 감독하고 불법행위가 있다면 이를 단속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다만 최근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천안의 모병원은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사무장병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병원은 폐업상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특사경 제도가 도입된다면 불기소 원칙으로 수사를 해야 하며 기소이전에는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가 아닌 개인 재산 압류 등 다른 방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며 “백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헌법정신을 되새겨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약사회는 건보공단 특사경이 복지부의 특사경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해평 서울시약사회 지도위원은 “면대약국 수사의 실효성 및 전문성 측면에서 공단 특사경 도입은 긍정적이지만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보건복지부장관이 요양기관에 대한 검사 권한을 건보공단이나 심평원에 위탁할 수 있어 건보공단 특사경이 복지부의 특사경으로 변질돼 수가권이 남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황 지도위원은 “현재 요양기관 개설절차에 있어 약국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약국 개설절차에 약사회 경유 심사를 통해 면허대여 의심 약국 개설 차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는 공무원이 아닌 비공문원인 공단 임·직원에게 특사경 직무를 예외적으로 부여할 만큼 불가피성이 인정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일반사법경찰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특사경 도입이 필요하다는 긴급성에 기반한 불가피성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건보공단은 기본적으로 보험료 징수 및 진료비 지급 관련 자료분석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조직인 만큼 사무장병원의 실제적인 병원운영관계를 파악해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전문성과 자료 확보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정책위원은 “이미 복지부에서 특사경 권한이 부여돼 있어 공단 특사경 도입 시 상호기관간의 역할 등에 있어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건보공단은 긴급성과 전문성을 들어 특사경제도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우병욱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지원실장은 토론에 앞서 발제에서 “긴급성과 전문성으로 특수분야 범죄수사에 신속성과 효율성을 도모해 일반사법경찰 제도를 보충할 수 있다”면서 “현재 국립공원관리공단 임직원, 금융감독원 직원, 여주 소망교도소(민영) 등에서 공무원이 아닌 자에게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우 실장은 “긴급성 측면에서 사무장병원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 보호를 위해 신속한 단속 등 조치가 필요하고 수사 장기화로 진료비 지급차단이 적기에 되지 않아 재정누수가 가중, 재산은닉, 사실관계 조작 등 증거인멸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보공단은 행정조사 경험자, 변호사, 전직 수사관 등 전문인력 200여 명을 보유하고 있고 전국적 조직망과 빅데이터 기반의 불법개설기관 예측·분석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단속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문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계가 우려하는 건강보험의 부당청구 수사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의 대상이 아니다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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