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형사 Du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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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형사 Duelist
  • 윤종원
  • 승인 2005.09.0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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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6년 만에 신작 "형사 Duelist"로 관객을 만난다.

데뷔작 "개그맨"(1988년)에서부터 "첫사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남자는 괴로워"와 지난 1999년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까지 그때 그때 시대를 앞서나가는 스타일을 보여줬던 이명세 감독은 긴 공백 끝에 돌아온 "형사"에서 여태껏보다 한참은 더 나아가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영화의 원작은 TV 드라마로 성공을 거뒀던 방학기의 만화 "다모". 제작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고(78억원) 아이돌 스타들이 두 주인공을 맡았으며 관객의 기대가 커진 만큼 자신의 부담 역시 컸겠지만 감독은 다른 영화들이 가는 안전한 길 따위로는 가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 특유의 영화 세상은 한층 더 거침이 없어 보인다. 현실의 시간과 인물의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며 강렬한 색과 빛의 대비, 그 속에 담긴 액션의 화려함으로 공간은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대사 역시 의미 자체보다는 극의 전체를 아우르는 리듬감의 한 부분일 뿐. 역모를 꾀하는 무리들과 그들을 잡으려는 포교들 간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줄거리는 흔하고 빈약한 대신 리듬감과 속도감을 갖췄다.

이야기는 "뻥쟁이" 장돌뱅이가 들려주는 입담의 형식을 빌린 액자식으로 구성돼있다.

조정의 어지러움을 틈타 가짜 돈이 유통되고, 좌포청의 노련한 "안포교"(안성기분)와 물불 안 가리는 의욕적인 신참 "남순"(하지원 분)은 파트너를 이뤄 가짜 돈의 출처를 좇는다.

범인을 쫓던 중 수면 위로 떠오른 사람은 정체를 모를 자객 "슬픈 눈"(강동원분). 병판대감(송영창)이 사건의 주모자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을 찾는 게 문제다.

첫 대결에서 달빛 아래 마주 선 두 사람. 선머슴 같은 여형사 남순, 그리고 고독한 자객 "슬픈 눈"은 그만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을 느껴버리고 만다. 위장해 잠입도 하고 드러내놓고 쳐들어가기도 하면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두 사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의 감정은 점점 애절해지고 그만큼 서로 죽여야하는 상황이라는 아이러니는 커져간다.

영화는 형사 장르 영화나 사극, 무협물 등의 겉모습을 지녔지만 감독이 그 안에 담아낸 알맹이는 두 인물의 멜로에 있다. 인물들의 사랑이 담긴 곳은 다른 영화처럼 달콤한 말이 아닌 검과 검이 부딪치는 대결. 사랑은 밀고 당기는, 공격하고 피하는, 그리고 쫓고 쫓기는 결투를 통해 전개가 된다.

기둥을 이루는 스토리나 여기에 덧붙여지는 이야기의 살들은 빈약한 편이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니는 카메라와 그 속의 인물들의 역동성은 이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다. 감정은 내러티브가 아닌 이미지들의 분출을 통해 연결되며 사랑은 휘두르는 칼과 이를 바라보는 눈빛 사이에서 피어난다.

쉰살을 바라보는 이 중견의 에너지는 지독히도 강렬한 이미지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역동적인 한낮의 장터와 홍등가의 불빛, 그 위에 흐르는 달빛, 그리고 결투를 벌이던 눈밭과 골목길은 붓 터치가 살아있는 한편의 그림처럼 눈에 각인되고 형사와 자객의 사랑은 한편의 시처럼 가슴에 들어온다.

덧붙여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비교적 무난한 연기를 보여줬던 하지원의 "변신"이다. 멜로에서 공포, 코미디 등 다양한 영화에서 쌓아왔던 하지원의 "내공"은 다양한 표정한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이 영화에서 비로소 빛을 본다. "슬픈 눈" 강동원 역시 "늑대의 유혹"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녀팬(혹은 소년 취향의 성인팬)들의 탄성을 이끌어내기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8일 개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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