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조, 의료공백 해결책 ‘수가 인상’ 정면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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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노조, 의료공백 해결책 ‘수가 인상’ 정면 비판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4.03.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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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재정 파탄될 수 있어…2001년 의약분업 당시 수가 인상 기억해야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정부가 의료공백 장기화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수가 인상’ 카드를 해결책으로 꺼낸 것과 관련해 제2의 건강보험 재정 파탄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2001년 의약분업 당시 급격하게 인상된 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흔들렸던 경험을 또다시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보노조는 3월 19일 정부의 ‘의사 집단행동 대비 비상 진료 건강보험 추가지원 방안’을 정면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경증환자 회송 및 응급·중증 수술 등의 수가 인상, 입원 환자 진료 공백 방지를 위한 정책 수가 신설 등 한시적 지원 방안으로써 매달 약 1,88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정부는 지난 2월 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 1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에 더해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는 국민의 생명 및 건강 보호를 위해 필수의료를 튼튼히 보장하고 의료공급이 적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보상을 위한 지불제도 개혁으로 행위별 수가의 체질 개선 및 대안적 지불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건보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추진 방향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내막을 살펴보면, 겉으로 보이는 의사증원정책의 이면에 ‘건강보험 재정투입과 수가 인상’ 문제가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수가 인상문제는 단순히 필수의료 수가를 현실화하는 문제를 넘어 의료전달 공급체계를 바로 잡는 일과 병행돼야 하는데, 정부가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2001년 의약분업 사태로 초래된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건보노조다.

건보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2000년 8월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후 의‧약‧정 대타협을 통해 2000년 한 해 동안에만 총 4회에 걸친 수가 인상이 발생했다.

실제로 2001년에만 급여비가 41.5% 급증했고 같은 해 건강보험 재정은 약 2조 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재정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의약분업과 급격한 수가 인상 때문이었다는 게 건보노조의 설명이다.

건강보험 재정 전망(제공: 건보노조)
건강보험 재정 전망(제공: 건보노조)

건보노조는 “만약 정부가 이번에도 의사 파업을 계기로 필수의료 수가 개선이란 명목으로 10조 원 이상을 투입한다면 제2의 건강보험 재정 파탄이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주장대로 의사증원으로 인해 의료공급의 증가가 곧바로 급여비 증가로 나타날지는 미지수일지라도 이로 인해 최소한 급여비가 줄어들 이유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고 일갈했다.

또한 건보노조는 “보상으로 과도하게 수가를 늘려준다면 위태위태한 건보재정이 파국으로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라며 “반드시 2001년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부언했다.

아울러 건보노조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정확히 반영했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급여비는 2015년 이후 코로나19 전까지 평균 9~10% 증가했고,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2019년에는 14% 증가했으며 코로나19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2022년에는 9.6% 증가, 이후 2023년에도 6.6% 증가했다.

이 같은 과거 수치를 토대로 볼 때 제2차 건보 종합계획에서 제시한 급여비의 6~7% 증가 수준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기준이라는 지적인 것.

건보노조는 “65세 이상이 일반인의 평균 3배의 급여비를 사용한다는 통계를 살펴봤을 때 노인 인구비율 12%대인 2015년의 급여비 증가율보다도 노인 인구 20%대인 현재의 급여비 증가율을 낮게 예상한 것은 과소 추계의 의심을 피할 수 없다”며 “2022년 OECD 평균을 초과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의 경우 OECD에 비해 그 증가속도가 두드러지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언급했다.

건보노조는 이어 “학계에서 2022년 급여비가 83조, 총진료비 100조 초과, 경상 의료비는 200조를 초과하는 통계를 고려해 2030년도 경상 의료비를 400조 수준에서 추정하고 있는 반면에 제2차 건보 종합계획에서는 2028년 127조, 2030년 150조가 안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현실적인 예측인가”라고 반문했다.

즉, 과거 9~10%대의 급여비 증가율에도 건강보험 보장률이 65% 수준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는데, 급여비 증가율을 과소 추계하고 보장률 목표가 누락돼 있는 제2차 건보 종합계획은 앞으로 추진될 건강보험 정책에 있어서 국민에 대한 의료 보장 수준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음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건보노조는 “앞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상 의료비 증가율과 과소 추계한 급여비 증가율에 숨겨진 보장성 축소 의도를 고려해보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2030년에는 6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며 “결국 2000년 재정위기 때 정부가 보장성을 낮게 유지하고 민간보험 시장을 확대해 준 사례가 다시 재현돼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이 국민의 건강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게 되면 불안해진 국민은 지금보다 더욱 실손보험을 선택할 것이고, 보험회사가 정책에 개입하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의료민영화로 이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질타했다.

끝으로 건보노조는 의료공백이 길어질수록 의료자본의 탐욕과 민낯들을 여과 없이 보게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 ‘의사 집단행동 대비 비상 진료 건강보험 추가지원 방안’ 재정투입 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법의 위임범위를 벗어났는지 법적 검토를 통해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건보노조는 “건보공단 측에 의사증원 및 필수의료 개선 등 건강보험공단 재정 안정화를 위한 ‘노·사 공동 재정안정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한다”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위협받거나 위기가 찾아온다면 전국 1만4,000명의 조합원들은 국민과 함께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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