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수치’ 기준으로 B형간염 치료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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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수치’ 기준으로 B형간염 치료 시작해야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3.11.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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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내 바이러스 수치 따라 간암 발생 위험 달라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팀, 환자 9,700명 분석 결과 국제학술지에 게재

B형간염 건보 급여기준 개정할 경우 간암 발생을 1년에 약 3,000명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중년 암 사망률 1위 질환인 간암의 발생 원인의 70%는 만성 B형간염이다. 현재 B형간염 약제는 간암 위험을 절반으로 낮춰주지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강보험 급여기준이 간수치가 크게 상승했을 때로 제한돼 국내 환자 중 약 18%만 치료 혜택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간암 발생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간수치가 아니라 바이러스 수치에 근거해 B형간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된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최원묵 교수팀이 만성 B형간염 성인 환자 9,709명을 대상으로 간암 발생 위험을 수년간 추적 관찰했다.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 최원묵 교수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 최원묵 교수

그 결과 B형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혈액 1mL당 1백만 단위(6 log10 IU/mL) 정도였던 환자들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해당 환자들은 장기간의 간염 치료 중에도 간암 발생 위험도가 50% 정도 낮아질 뿐 여전히 가장 높은 위험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환자들의 혈액 내 B형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1백만 단위에서 멀어질수록 즉, 더 높아지거나 낮아질수록 간암 발생 위험은 점진적으로 감소하며, 이러한 관계는 간염 치료 중에도 유지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현재 B형간염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도 간수치가 정상이면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간염 치료를 조기에 시행할 경우 간암 발생자 숫자를 최대 6분의 1로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소화기 분야 최고 권위지인 ‘거트(GUT, 피인용지수 24.5)’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돼, 향후 국내외 B형간염 치료지침 및 건강보험 급여기준 개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국내 5개 대학병원(서울아산병원, 경희대학교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B형간염 치료를 시작한 성인 환자 4,693명을 평균 7.6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가운데 193명에서 간암이 발생했다.

반면 간염 치료를 받지 않은 5,016명 중에서는 322명에게서 간암이 발생했다. 이같은 결과는 간염 치료가 간암 발생 위험을 전체적으로 약 50% 감소시킨다는 것.

하지만 치료군과 비치료군 모두에서 바이러스 수치가 혈액 1mL당 1백만 단위(6 log10 IU/mL)인 경우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았다.

반면 바이러스 수치가 1백만 단위에서 멀어질수록, 즉 매우 적거나(1만 단위 미만) 매우 많은(1억 단위 이상, ≥8 log10 IU/mL) 환자들은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낮았다.

종합하면 바이러스 수치가 1억 단위 이상에서 치료를 개시한 환자들에 비해 1백만 단위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의 간암 발생 위험은 최대 6.1배나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바이러스 수치에 비례해 간암 발생 위험이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간염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바이러스 수치가 간암 발생 위험과 연관이 없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연구팀은 간암을 잘 예방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수치가 매우 높을 때(1억 단위 이상, ≥8 log10 IU/mL) 또는 상당히 낮을 때(1만 단위 미만) 간염 치료를 개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결국 간암 위험도를 낮게 유지하려면 복잡한 B형간염 치료 개시 기준을 혈중 바이러스 수치만을 기준으로 단순화하고 조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성 B형간염에서의 바이러스 수치와 간암 발생 관계
만성 B형간염에서의 바이러스 수치와 간암 발생 관계

현재의 B형간염 치료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매우 복잡하다. 바이러스 수치가 최소 2,000단위 이상이면서 간수치(AST 또는 ALT)가 정상 상한치의 2배(80 IU/L) 이상이어야 한다.

임영석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매년 국내에서 약 1만2,000명의 간암 환자가 새롭게 진단되는데, 대부분 중년 남성이다보니 심각한 사회경제적 손실과 가정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혈중 B형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2,000 IU/mL 이상인 성인 환자는 간수치와 상관없이 간염 치료를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1년에 약 3,000명, 향후 15년간 약 4만여 명의 간암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임영석 교수의 주장이다.

아울러 임영석 교수는 “B형간염 치료시기를 간염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단순화하고 앞당길 경우, 간암 발생을 예방함으로써 사회적인 비용 부담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도 이미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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