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행위라 함은 의료인이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료,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인이 객관적·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시행한 의료행위에서도 악결과는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그 원인과 책임여부를 논함에 있어 그 동안의 학설 및 판례의 내용과 그 기준에 차이가 있고, 의학기술의 발전 및 그 시대의 사회환경적 상황에 따라 내용이 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료행위만이 가
지는 특성 때문이다.
의료행위의 특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환자안전사고, 의료사고와 같은 악결과의 원인을 분석하여 예방하고 보건의료와 관련된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는게 그 첫걸음이다. 반대로 말하면 의료행위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시스템, 제도, 정책의 실행 결과는 그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가. 구명성(救命性)
의료인이 행하는 의료행위는 그 자체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신체를 완전하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즉 의료는 질병이라고 하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 침해를 예방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유익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구명성을 내포하게 된다.
환자의 구명이라는 이타적 목적을 본질적으로 가진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일정부분의 용납 또는 허용을 받게 되고 사회적 비난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의료행위의 다른 특성들이 가진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명성이라는 대전제가 의료행위와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의 권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가능하게 한다.
즉 의료인은 환자를 구하고자 하는 선의(善意)로 의료행위를 행하기 때문에 비록 의료행위로 인해서 악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과실유무에 대한 판단이 다른 행위 결과에 대한 판단과는 차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이 되면서 이는 의료사고의 조사 및 감정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 된다.
하지만 의료인의 의료행위가 사회적 합의를 통한 권한 부여라고 할지라도, 모든 권한에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책임과 그에 따른 행동이 수반된다. 이를 법률적으로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라고 한다.
나. 침습성(浸濕性)과 위험 내재성
의료인이 행하는 진단부터 검사, 처치, 수술 등의 모든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는 의료인이 그 대상인 환자를 상대로 환자의 몸에 일정한 접촉 또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해를 가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필연적으로 신체 또는 정신에 대한 침습이 수반되는 과정을 포함하게 되어있다.
물론 이러한 침습은 그 결과가 좋게 나오기 위해서 하는 목적을 가진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의료행위에 따른 결과가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의료인이 주의를 게을리하여 발생한 주의의무 위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 침습의 과정이 어쩔 수 없는 또는 불가항력적으로 사람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해로 나타나는 악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성은 의학이나 의료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면서 환자 개인, 더 나아가 인류 공동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하여 허용된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상기 서술한대로 의료행위가 구명성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고, 또한 침습으로 인한 위험성을 내포하지만 그에 따른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이익형량의 원칙에 따라서 의료행위는 허용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런 침습을 통한 위험을 내포한 의료행위가 건강수준 향상이라는 목적에 위배되거나 환자의 동의 없이 행해지는 경우라면, 즉 의료인이 환자에게 해를 가할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하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전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과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의료행위는 범죄행위가 된다.
그동안 소홀하게 생각했던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설명과 동의과정은 의료인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베푸는 온정(溫情)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범죄가 될 수 있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책임인 것이다.
이를 사전동의(Informed consent) 또는 설명의무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다. 전문성(專門性)
의료행위의 특성 중 전문성은 의료행위가 내재하는 당연한 특성으로 지금까지 인식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이견이 없었음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즉 의료행위는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들여 의학 및 의료기술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습득하고 오랫동안 필요한 기능과 기술을 익히는 수련과정을 거쳐 양성되는 전문직업인인 의료인이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의료행위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조치나 서로 주고받는 의학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는 의학 및 의료기술에 관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료행위의 전문성으로 인해 일반인은 의료에 대한 접근과 정보 습득이 어렵게 되고 설령 정보를 습득하였다고 할지라도 이에 대해 전문적이고 정확한 해석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근래 인터넷의 발달과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블로그,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의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의 발달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의료 및 의학 또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확인되지 않거나 근거 없는 많은 정보의 무분별 공유로 인한 잘못된 정보의 확산이 오히려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수행함에 있어서 커다란 제약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앞으로는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와 의료인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소통을 어렵게 하여 그로 인해 올바른 의료에 대한 정보를 의료인이 더욱 독점하게 만들어 정보의 불균형을 가중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의료행위의 사회환경적 변화속의 이와 같은 모순은 의료분쟁으로 이어진다.
라. 밀행성(密行性)
의료행위는 일반적으로 위생관리 측면 또는 환자가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외부와 격리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술이나 수술의 목적으로 마취 등이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 장소에서 의료행위를 받는 대상인 환자 자신도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두려움과 더불어 항상 궁금해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의료행위 과정을 기록한 진료기록 또한 상기 기술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의학용어 등으로 기술되어 있어 특히 악결과가 발생한 경우 환자와 가족 측이 발생한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양 당사자 간에 오해 등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인해 의료분쟁으로 이어진다.
위생관리와 환자의 사생활 보호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료행위 과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참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분명 악결과에 대해 이해 당사자가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게 할 것이고 갈등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밀행성을 해결하는 방안에 대해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은 세부적인 내용의 노출 및 유출로 인해 과실유무 판단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제1항에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공개된 타인 간의 대화’나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당사자 간의 대화’는 금지대상이 아니다. 즉 당사자 간의 대화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어느 한 당사자가 녹음해도 위법이 아니며, 이는 대화가 대면방식의 직접대화이든 전화통화방식의 원격대화이든 그 방식에 관계없고, 사(私)인 간의 대화, 민원인과 공공기관 간의 대화, 구매자와 판매자, 신청인과 상담원 간의 대화 등 대화의 내용에도 관계없이 모두 적용된다. 심지어 녹음에 대한 일방의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녹음하였더라도 합법적인 증거로 보아야 하고, 다수 당사자 중 1인이 녹음한 경우에도 합법이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상대방과의 이해관계에 있어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녹음한다는 것은 형법상 일종의 자력구제행위 노력이나 정당방위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IT기기의 발달로 인해 동의를 받지 않은 당사자 간의 녹음이나 녹취가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한 지금 시대는 의료행위 양 당사자 간의 소통과 이해를 통한 갈등해결을 오히려 막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의 틀 안에서 수술과 시술 등에 대한 녹화와 대화내용 녹음의 적절한 활용은 의료행위 당사자 간 분쟁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자료이다. 즉 설명의무의 이행여부, 환자의 동의여부, 주의관찰 이행여부 등을 명확히 밝혀 의료인에게 책임이 없음을 밝히는 채무부존재(債務겘存在) 거증자료도 될 수 있으므로, 의료인은 의료행위의 밀행성의 단점을 지양하고, 이해와 소통을 통한 갈등상황 해결을 위해 전향적인 방안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