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보여준
김상진 감독이 돌아왔다. TV와 영화,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나문희를 내세워서.
최고 흥행 감독으로 꼽히는 강우석 감독 밑에서 수업받은 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등 코미디 장르에서 자신의 이름을 굳건히 한 김상진 감독이 전작 "귀신이 산다"에서의 실망감을 회복했다. 일등공신은 권순분 여사, 나문희다.
김상진 감독은 소동극에 강하다. 개성 강한 젊은이들의 한바탕 난장판인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초등학교 시절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동창생의 좌충우돌을 그린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를 받기 위해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하는 탈옥범의 난리법석 "광복절 특사"까지. 특히 상황 설정만으로도 무릎을 치게 만든 "전복적인" 사고방식이 관객에게 먹혀들었다.
이번에는 납치를 자처한 인질의 이야기다. 어수룩한 납치범들은 영민한 인질의 계획대로 몸값을 받아내는 데 동원된다. 인질극을 총지휘하는 사람이 인질인 것.
영화 "열혈남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자신을 원톱으로 내세운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제작 감독의 집, 어나더썬데이)까지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맞고 있는 나문희는 강성진ㆍ유해진ㆍ유건, 세 남자를 당해낼 정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뽀글뽀글 퍼머 머리에 중년의 배를 쑥 내민 "몸빼" 바지 스타일만으로도 관객은 웃자고 덤빌 터. 여기에 세 남자는 과하지 않은 배역의 크기를 감당해내며 슬랩스틱과 표정 연기까지 다양하게 해낸다.
돈은 벌었으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고 돈밖에 모르는 자식들을 배치한 이번 영화에서 코미디에 교훈을 얹으려한 시도가 충분히 짐작된다.
황당한 상황 전개가 펼쳐지기에 "어찌 그럴 수 있어?"가 "저럴 수도 있겠네"라고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유해진의 극중 이름이 문근영, 강성진의 이름은 강도범 등 이름으로 웃기는 한국 코미디영화의 기본 공식(?)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예고된 수순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향해가고, 시작하자마자 예상 가능한 결말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보는 재미를 더 이상 키우지는 못했다.
도범(강성진 분)은 아이를 교도소에서 낳게 된 아내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2천만 원이 필요하다.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노총각 근영(유해진)은 결혼 사기를 당한 후 틀니를 해넣을 돈에 쌈짓돈을 얹어주신 어머니 뵐 면목이 없어 자살하려고 한다. 도범의 처남 종만(유건)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백수.
이들은 국밥집으로 큰 돈을 번 권순분(나문희) 여사를 납치한다. 돈 많고, 나이 든 여자이니 인질로 잡기가 수월할 것이란 예상 때문.
한데 이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만다. 권순분 여사는 휴대전화 길 찾기를 능숙하게 해내고, 능력있는 경찰서장 안재도(박상면)가 양아들이나 다름없어 경찰의 수사망을 꿰뚫고 있을 정도로 신식이며 비상한 할머니다.
권 여사는 납치범들이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하자 평소 연락도 잘 안하는 자식들에게 은근한 기대감을 품는다. 그러나 기대는 무너져내린다.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선거운동에 바쁜 큰아들은 장난전화로 치부하고, 골프장 사업에 진출하려는 큰딸도 시간 없다며 전화를 곧장 끊는다. 둘째딸은 왜 언니, 오빠 놔두고 나한테 전화하느냐고 화를 내고, 노름 하느라 바쁜 백수 막내아들은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자식들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 상태인 권 여사는 자식들에게 돈을 다시 받아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순진하게도 5천만 원이 목적이었던 납치범들에게 500억 원은 받아야 한다며 몸값 500억 원을 경찰과 자식들에게 요구한다.
웃자고 만든 영화, 웃으면 된다. 추석 시즌 한국 영화 경쟁이 흥미로워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9월13일 개봉.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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