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유일 보건의료분야 연구회인 국회보건의료발전연구회(회장 정재훈, 국보연)가 ‘국가대표급 보물 연구회’로 거듭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국보연은 지난 5월 30일 개원한 제22대 국회에 10개의 아젠다를 제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국보연 정재훈 회장, 김충기 대외협력위원장, 안상준 총무위원장, 정성관 전문위원, 백종우 신경정신의학 정책연구소 소장, 김유식 미디어위원장, 이상태 사무총장 등은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원신문과 만나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10개 아젠다’를 공개했다.

10개 아젠다 면면을 살펴보면 3개월이 넘도록 의·정 갈등의 원인이 된 의대정원 증원 이슈 또는 의료인력 확대에 대한 내용이 일절 포함돼 있지 않은 게 특징이다.

의대정원 증원 이슈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정작 국민에게 절실히 필요한 보건의료정책들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국보연의 고민의 흔적인 것.

실제로 국보연은 10개의 아젠다 안에 시급한 공론화가 필요하거나 장기적으로 보건의료계의 발전을 위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즉, 새롭게 출발한 제22대 국회가 앞으로 4년간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건의료계의 성숙한 성장을 위해 무엇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

우선, 소아진료체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다.

정성관 전문위원은 “아이들이 중등증 질환치료와 응급처치를 적절한 시기에 잘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를 위한 법 개정이 마련돼야 하고 소아청소년에 대한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관련 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저출생 문제와 직결된 의료행위에 따른 보상을 사회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 위원은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관점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모든 지원 정책들이 국회에서 입법 등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가령 소아청소년 국가접종의 경우 국가가 별도의 예산으로 진행하듯 아동 학대 및 입양 문제 등 소아청소년 관련 지원은 별도 예산 책정이 추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 번째, 뇌혈관질환(급성기 뇌경색) 발생 시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의 조성이다.

안상준 총무위원장은 “뇌혈관질환이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국가가 최대한 보장을 해줘야 한다”며 “치료가 잘 안 됐을 경우 후유증과 재활 등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이는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필수과가 아닌 필수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는 게 안상준 총무위원장의 생각이다.

안 위원장은 “필수 진료과라고 모두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 종사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필수의료 종사자들이 소외될 수 있다”며 “정부와 의료계조차 정의 내리는 게 어려운 필수의료를 필수과가 아니라 필수질환으로 접근한다면 의외로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는 만큼 대학병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관련 학회별로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네 번째, 심부전 질환에서 중증으로 진행 시 상급종합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의 마련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서 중증질환 비율이 강화되면서 심부전 질환의 중증 비율이 빠졌는데, 이 때문에 상급종합병원이 심부전 질환을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고, 결국 이는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 심부전 질환 환자를 돌보는 세심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다섯 번째, 정신의료 서비스의 예방·치료와 사후 관리를 신체 질환과 동일하게 보고 전국민이 선진국 수준의 정신의료 서비스를 받아 자살율 등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백종우 소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됐음에도 여전히 정신질환 문제를 가족에게 맡기고 있고 신체질환에 비해 사회적인 노력과 투자가 부족하다”며 “지역 사회에서 찾아가는 정신질환 치료 및 회복 서비스에 관심을 둬야 하고 높은 자살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신체질환에 대한 투자와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여섯 번째, 현재 150명가량인 의료급여환자들이 의료적 치료에서 건강보험환자와 비슷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재훈 회장은 “최소한 생명에 위협을 주는 급성 및 중증 질환에서만큼은 의료급여환자도 복지의 개념으로 접근해 중앙정부의 재정으로 적극 보장해 줘야 한다”며 “이는 인권의 문제이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이고, 차별의 문제인데 그동안 의료계와 국회를 비롯해 인권단체 모두 너무 외면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일곱 번째,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의료서비스 대비 의료비 절감이 가능한 전문병원제도가 국민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덟 번째, 전 세계적으로 골칫거리를 앓고 있고 대한민국도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물질 중독과 관련해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법안 마련 및 제도적 정비다.

정 회장은 “약물 및 물질 중독은 내버려 두면 10년 뒤에 정말 걷잡을 수 없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국회 차원에서 반드시 미리 준비를 해야 하고 정신건강복지법에서 따로 분리해 별도의 재정법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홉 번째, 초고령화 사회를 맞아 신체기능 유지와 회복에 있어서 한방의료와의 효율적인 협진 구조가 필요하며 국민이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의 효율성 증대 및 보장성 강화 등의 제도적 도움이다.

정 회장은 “한방 의료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협업을 통해 같이 갈 가치는 있다”라며 “한방을 무조건 키우자는 의미가 아니라 협진 시스템이 국민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지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지막 열 번째, 암과 만성질환의 조기 발견을 통해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국가건강검진을 점점 커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하자는 제안이다.

정 회장은 “비급여의 난립보다 급여가 확대되는 것이 정부와 국민의 공통된 바람인데, 암과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 실시하는 국가건강검진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검사 항목, 지원 항목 등을 업데이트하고 국민과 함께 현 국가검진을 검증 및 평가해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실비보험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하는 장기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보연은 10개의 아젠다를 중심으로 국회와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건넸다.

김유식 국보연 미디어위원장은 “옳은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있을 수 있는데, 그 옳은 길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국보연이 해야 할 일”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정치의 본질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양극단을 중간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론화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의견이 공공성을 지닌 방향으로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국보연이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