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보고 확대 시행에 ‘뿔’난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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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보고 확대 시행에 ‘뿔’난 의료계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9.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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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협·내과의사회·신경외과의사회 등 성명 통해 단호한 ‘반대’ 입장 표명

비급여 진료비용 보고 확대를 둔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9월 4일 비급여 보고항목, 보고횟수, 보고 내역 등을 규정한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및 공개에 관한 기준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이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은 1년에 2회, 의원급 의료기관은 1년에 1회 비급여 진료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개정된 고시에 따르면 2023년 보고 대상이 되는 비급여 항목은 기존 항목 565개와 신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평가결과 고시 중 요양급여 결정 신청된 행위, 제한적 의료기술, 혁신 의료기술 등 29개 항목을 포함해 총 594개이며 2024년에는 1,017개로 확대된다.

이와 관련 의료계는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성명을 쏟아냈다.

우선, 대한개원의협의회(회장 김동석)는 비급여 보고 개정안이 국민의 알 권리와 의료선택권 보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정부의 비급여 통제를 위한 사전 포석이 깔려있음을 우려했다.

대개협은 “비급여 정보에는 민감한 환자의 진단명과 치료 내역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이 같은 개인정보가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는지에 대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라며 “과거 판결을 뒤집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과 복지부의 발 빠른 고시 개정으로 개개인의 다양한 의료정보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보고되고 집적·가공돼 다양하게 활용될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보고 서식 작성요령 및 예시’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24장에 달하는 문서를 배포했는데, 과연 실제로 작성이 가능한 내용인지 의심이 든다고 밝힌 대개협이다.

대개협의 설명에 따르면 문서에는 각각의 환자에 대해 최대 20자리에 이르는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개인정보 및 보험의 종별, 진료과목 코드, 입원 및 외래 구분, 입원 기간 등 비급여와는 무관한 정보의 기입을 다수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보고 분야, 표준코드, 의료기관별 사용 코드, 항목 구분, 코드 구분, 단가, 실시 빈도, 비용, 상병명, 주수술, 시술명 등 10여 개 항목에 이르는 비급여 내역을 기재하도록 해 1인 의원에서는 문서 작업으로 인한 행정적 부담 가중 및 진료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개협의 설명이다.

대개협은 “국가가 개인 사업자에게 과도한 행정적 작업을 요구하면서 비급여 진료를 억제·통제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지만 정작 국민끼리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를 ‘정부의 알 권리’를 위해 제공토록 강요하는 부당하고 행정편의주의적인 비급여 진료 내역 보고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외쳤다.

이 외에도 대개협은 △고시에 포함된 세부 항목 중 의과 행위와 결정적 차이가 없고 한방적 근거가 불분명한 한방경피전기자극요법 및 경근간섭저주파요법의 삭제 △비급여 한방물리요법 진료비용 목록화 및 급여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비급여 보고 항목 목록화 중단 등을 요구했다.

대한내과의사회(회장 박근태)는 비급여 진료비용 보고 확대가 의사의 진료 자율성과 국민의 의료 소비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저수가를 비급여로 겨우 보전 중인 필수의료 분야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국민이 언제나 각 의료기관의 비급여 항목과 가격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건보공단에서 일률적으로 정한 항목·형식에 맞춰 비급여 진료비 신고를 강행하는 것은 이를 통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

내과의사회는 “의료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단일 비급여항목의 가격뿐만 아니라 치료에 드는 질환별 총진료비와 비급여의 비중까지 제출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비급여의 표준화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업무를 만들고 수많은 관치제도 즉, 현지 확인 등을 파생시킬 수 있다”고 일갈했다.

만약 특정 비급여 항목 관리가 필요하다면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게 내과의사회의 주장이다.

내과의사회는 “저부담, 저수가의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 비급여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며 “국가 단일보험체계에서 신의료기술과 고가의 의료행위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료 발전을 저해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민건강을 위협할 것이 뻔하다”고 언급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회장 최세환)도 이번 고시 개정은 비급여 통제를 위해 정부가 몽니를 부리는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비급여는 신의료기술의 통로가 돼 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차이를 가져오고, 낮은 의료 수가를 보상하는 현실적 방법론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지저분한 고시를 강행하는 것은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의료를 관치에 입각해 강력히 통제하겠다는 의도라는 의미다.

신경외과의사회는 “보장성을 현재처럼 유지하면서 비급여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겠지만, 진정으로 비급여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이면 비급여를 공적자금이나 보험료가 투입되는 급여로 전환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고 저수가의 개선과 원가 산정을 위한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경외과의사회는 이어 “비급여 보고서 양식의 예시처럼 작성하는 데 투입되는 행정적 부담에 대한 보상 없이 개인의 의료정보까지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는 이번 고시 개정은 철회돼야 마땅하고 불순한 고시 개정을 주도한 담당자들은 징계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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