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그리는 파프리카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관객의 눈앞에 구비구비 펼쳐놓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꿈이다. 새로 찾아온 일본 애니메이션 "파프리카"는 성인 관객이 애니메이션을 보러 극장을 찾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인간의 꿈속에 침투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관객의 상상력만 요구하며 감추기보다 등장인물이 직접 뇌를 통해 사람의 꿈속으로 침입, 그 안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소리로 들려준다.
이성적이고 반듯한 성품의 신경정신연구소 박사 지바 아쓰코(히야시바라 메구미)는 아이 같이 순수한 천재 도키타(후루야 도루)와 함께 "DC미니"라는 심리치료 장비를 만든다. 환자의 꿈속으로 직접 들어가 우울증이나 불안감 등 신경증세를 치료하기 위한 장비다. 꿈에 들어가는 상냥한 치료사는 "파프리카"라고 불리는 아쓰코의 또 다른 자아다.
어느 날 DC미니 3개가 도난된다. 문제는 이 장비는 제어장치를 달지 않은 미완성 제품이라는 것. 지바와 도키타는 범인을 잡으려 하지만 연구소장 시마(호리 가스노스케) 등 주변 사람들 한 명씩 DC미니를 이용한 공격을 받는다. 머릿속에 침투, 정신을 흐트려 놓으면서 주변에 행패를 부리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
상황이 점점 더 위험해지자 시마 소장과 친구 사이로 꿈 치료를 받고 있는 도시미 고나카와 형사(아키오 오쓰카)도 지바, 도키타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선다.
등장인물들의 꿈속에는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인간의 욕망, 잊힌 꿈, 억눌린 사랑이 담겨 있다. 평소에는 반듯하고 냉정한 성격의 아쓰코는 꿈속에 들어가는 파프리카의 모습일 때는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만큼 다정다감한 모습이다. 고나카와 형사는 파프리카를 통해 잊고 지냈던 청년시절 꿈을 되살리는 반면 DC미니를 훔친 범인은 뒤틀린 꿈을 실현하려 한다. 이들은 각각 꿈 체험의 긍정적-부정적 효과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여준다.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정신이 불안한 사람의 머릿속 모습이 화려한 색채, 시끄럽고 섬뜩한 소리의 장난감 퍼레이드로 표현되는 장면이다. 퍼레이드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케 할 만큼 다채롭고 일본색이 짙다.
영화는 꿈속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꿈을 바깥의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다. 꿈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인물들이 넘나드는 꿈과 현실의 경계는 극장의 스크린이 되기도 하고 놀이공원 문의 난간, 복도 끝의 문, 인터넷 사이트 등 주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그 경계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점점 더 모호해진다.
곤 사토시 감독은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원작의 저자 쓰쓰이 야스타카는 올 봄 국내에서 관객 호응이 컸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을 쓰기도 한 일본의 대표적인 SF 작가다. 주연을 맡은 히야시바라는 "카우보이 비밥" "신세기 에반게리온"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내달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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