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진료에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2일 한의사 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0∼2012년 한의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초음파 진단기를 이용해 진단하는 등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A씨는 초음파 진단기를 이용해 진료하더라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한의사들이 정규 과정에서 초음파 진단기 사용 방법을 교육받는 만큼 한의사 면허 범위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모두 A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초음파 진단기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에 기초해 개발됐다고 볼 수 없고 한의사 전문의 전문과목에 영상의학과가 없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에 위해를 발생시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의료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려면 종전과 다른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료기기에 관해 한의사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적 규정이 있는지, 한의사가 해당 기기를 진단 보조 수단으로 쓰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등을 새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한의사가 진단 보조 수단으로 쓰더라도 통상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한의사가 모든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명시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진단용 의료기기에 한정해 보조 수단으로 쓸 경우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초음파 진단기와 달리 방사선을 이용한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는 한의사의 사용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반면에 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우리 의료체계는 양방과 한방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화 원칙을 취하고 있고 의사와 한의사를 구별해 면허를 부여하는 만큼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한 의료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한 한의사의 헌법소원을 기각한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재의 합헌 내지 헌법소원 청구 기각 결정은 기속력이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헌재는 다른 사건에서 과학기술 발전 등에 따라 전향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을 열어둔 사례가 있다"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헌재의 과거 결정 취지와 배치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안압측정기 등 의료기기를 이용해 안질환을 진료한 한의사가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받아들여 2013년 12월 기소유예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당시 헌재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해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