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교수들 근무에 집중…의료 개혁 미명 하에 연구 역량 ‘황폐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의과학 연구 역량에 빨간불이 켜졌다.
진료, 교육, 연구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교수의 책무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서울대학교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모든 게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의학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은 이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35.7%)으로 감소했다.
과거 연구에 10시간을 할애했다면 현재는 3시간 30분밖에 쓰지 못한다는 의미다.
연구 역량의 하락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서울의대 비대위의 설명이다.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 데는 보통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현재 상급종합병원의 파행적 상황은 내년 이후부터 실제 연구 성과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
당장 급한 진료 업무조차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오랜 시일을 투자해야 하는 연구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상황.
아울러 교수 10명 중 7명은 24시간 근무 후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절반 가까이(45%)가 주 7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료량 축소 조치 등으로 사태 초기보다는 다소 나아졌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교수가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9개월 이상 지속됐고 앞으로도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본 서울의대 비대위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지난해 한국의 의학 분야 연구 논문 수는 세계 13위에 해당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최근 몇 년간 정체돼 있다”며 “이번 의대정원 증원 사태로 인해 향후 연구 성과는 오히려 줄어들고 다른 국가와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게 뻔하다”라고 경고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이공계의 미래 역시 암담한데, 세계적으로 첨단과학 분야의 연구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연구개발 예산이 삭감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를 가기 위해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있다”라고 부언했다.
이공계는 미래 연구 인재가 사라지고 의학계는 연구 역량이 소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
서울의대 비대위는 “이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2,000명 의대정원 증원에서 비롯됐다”며 “한번 무너져버린 연구 역량을 복원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라고 언급했다.
서울의대 비대위는 이어 “의과학 연구 역량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학계의 연구 역량은 10년 이상 퇴보할 위기에 처했다”며 “개혁이란 미명 하에 밀어붙이는 정책이 국가 미래를 책임질 연구 역량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