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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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의 순정
  • 윤종원
  • 승인 2005.04.20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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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해제"라는 말은 문근영 앞에서 대단히 유효하다. 그의 영롱하고 해맑은 눈빛은 상대방에게 곧바로 그러나 대단히 부드럽게 전염된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이효리의 섹시함이 상대방에게 "전기 충격"을 준다면 문근영은 "봄눈 녹는" 화사함을 전해준다.

영화 "댄서의 순정"은 그러한 문근영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영화다. 전국 310만명을 모은 "어린신부"의 영광에 다시 한번 도전한 작품. 제작진의 선택은 이번에도 주효했다. 문근영은 여전히 예쁘고, 아니 더 예뻐졌고 더 착해졌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의 순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문근영의 순정은 남녀노소에게 일체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거부감은 커녕 문근영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장해제당한 관객은 저 밑에 가라앉아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순정을 잽싸게 꺼내들게 된다. 관객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너그러운 관람의 자세를 취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연변처녀 장채린(문근영 분)이 위장결혼을 통해 서울에 온다. 스포츠댄서인 나영새(박건형 분)와 짝을 맞춰 댄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곡절 끝에 "조선자치주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언니 장채민을 대신해 온 채린은 춤을 전혀 못춘다. 파트너가 뒤바뀐 사실에 기막힌 영새는 그런 채린을 외면할까 하다 결국 훈련시켜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노래방에서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멋대로 열창하던 "어린신부"가 이번에는 등려군의 "야래향"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고 삼바춤까지 춘다. 2년 사이 키가 3㎝ 자라 165㎝가 된 문근영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꽤 날렵하게 삼바를 소화한다.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흔들고 빠른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볼거리. 어여쁜 모습만으로도 만족하겠는데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에서 단련된 춤까지 선사하니 감사할 따름. 다시 2년 뒤에는 어떤 모습을 선보일 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린신부"에 이어 다시한번 소녀적 환상을 극대화했지만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중국어와 춤 연습에 흘린 땀방울만큼 "어린신부" 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다. 여전히 순정만화의 눈높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어린신부"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키치적 유머도 밉지 않고 완성도를 떠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만하면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한 것. "어린신부"에 이어 "댄서의 순정"을 제작한 컬쳐캡미디어의 전략이 욕심에 머물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어린신부"에서 김래원이 차지했던 부분이 텅 비어버린 느낌은 지울 수없다.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의 스타 박건형이 춤 솜씨를 발휘했지만 그의 굳은표정은 김래원의 해사함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김래원과 문근영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호흡은 없는 것. 물론 문근영이 그 사이 대폭 성장, 혼자서 스크린을 꽉 채워도 괜찮을 정도가 되긴 했지만 양손이 부딪혔으면 박수 소리가 훨씬 크게 났을 터.

또한 젖살이 빠지고 키가 크긴 했지만 문근영은 여전히 어린 소녀의 모습. 그가 스텝도 밟지 못하는 댄스의 문외한에서 점차 발전,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섹시한 삼바댄스를 소화하기까지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이미 문근영에게 마음을 내준 관객은 자신의 동생 혹은 딸의 성장을 지켜보는 듯한 "심각한" 착각 속에서 "아이고 잘한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때 문근영에게서 여인의 향기가 났다면 마지막 단계에서 영화는 팝콘이 터지듯 팡하고 꽃을 피웠을 것. 그러나 영화는 CG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이러한 장애로 인해 그 직전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소녀 문근영이 정열의 삼바를 순정의 삼바로 바꿨다해도 그녀는 어여쁜 걸. 상당수의 관객이 그녀의 "아즈바이"가 되고 싶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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