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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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존엄사’ 인정 판결
  • 박해성
  • 승인 2009.05.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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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불가능성 여부·판단주체 등 기준 제시
국내 최초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 즉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21일 오후 2시 식물인간 상태인 김모(76·여)씨와 가족들이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고 세브란스병원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의학적으로 의식 회복이 불가능하고, 신체 기능을 상실해 짧은 기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경우를 ‘회복 불가능한 사망 임박 상태’로 한정하고, 이 같은 경우에 한해 환자 본인의 의사가 인정되면 환자의 존엄을 해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위해 항상 대법원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자체 윤리위원회의 판단 하에 결정하면 될 것”이라 덧붙이며 존엄사를 인정하되 그 판단의 재량권은 각 의료기관에게 넘겨주었다.

존엄사 인정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오며 향후 존엄사법 등 관련법 추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회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한 법안이 몇 개 발의돼 계류 중에 있는 상태로 대표적인 계류법안으로 김충완 의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안’과 신상진 의원의 ‘존엄사법안’을 들 수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안’은 말기암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본인의 의사에 의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말기암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환자 본인이 미리 서면으로 작성해 결정하도록 한 것으로 최근 말기암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한 서울대병원의 기준과 유사하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말기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공식적으로 통과시키고 의료윤리위원회를 통해 연명치료 중단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바 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의 치료를 선택하도록 한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 본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으나,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김충완 의원의 법률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신상진 의원의 ‘존엄사법안’에는 존엄사의 개념, 절차, 요건, 처벌규정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며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있다.

또한 존엄사 적용 범위를 ‘의학적 기준에 따라 2인 이상의 의사에 의해 말기상태 진단을 받은 환자로, 의학적 판단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로 명확하게 한정하고 있다.

존엄사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신상진 의원은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결정 대해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현장과 환자, 환자 가족들의 현실적 요구를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해석하며 환영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변웅전 위원장 또한 논평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의료계·종교계·법조계·시민사회 등 각 부문의 의견을 수렴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담아내는 존엄사의 범위와 기준·절차 등을 법제화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혀 국회의 존엄사 관련 입법추진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은 병원계·의료계에도 영향력이 적지 않다.

회복 불가능성 여부와 판단 주체 등의 기준을 제시해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으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판단을 의료기관에게 넘긴 것으로 사회적·법률적 합의가 필요한 상태이다.

연세의료원 박창일 의료원장은 “대법원의 판결에서 제시된 기준을 중심으로 각계의 의견을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태에서 존엄사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며 “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 무분별한 연명치료 중단이 일어나지 않도록 존엄사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시행할 것”이라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대한의사협회(회장 경만호) 역시 “이번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개략적 요건만을 판단하고 있으므로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 인정 범위 등에 대한 조속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의학계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과의 유기적 협조체계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에 앞장 설 것이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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