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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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 윤종원
  • 승인 2004.12.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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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드디어 "사랑"에 눈을 떴다.

23일 개봉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성 라퓨타" 등으로 40년 애니메이션 인생을 꽉 채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과 평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너"를 지키고 싶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

18살의 소녀 소피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꽃미남 마법사 하울을 만난다. 그러나 소피는 그와 함께 한 잠깐의 공중 데이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리고 쭈글쭈글한 90살의 할머니가 된다.

집을 나온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들어간다. 밤마다 상처입은 몸으로 들어오는 하울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소피. 그러던 중 매일 벌어지는 전쟁에 지쳐버린 하울을 위로해주고 하울 대신 국왕을 만나러 간다.

감독이 그려낸 환상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선다. 집과 철근으로 만든 "움직이는 성"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지친 몸을 달래주고 외로운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는 아지트 역할을 해낸다.

불꽃 악마 "캘시퍼"와 외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무대가리 허수아비, 어수룩한 변신을 즐기는 제자 "마르클", 철없는 악마 "황야의 마녀" 등 톡톡 튀는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꽃미남 마법사 하울과 할머니가 된 소피, 가장 환상적인 이 둘의 캐릭터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커다란 새로 변신해 잔인하게 적을 해치우는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지만 머리카락 색깔 하나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괴로워하는 중증 왕자병 환자인 하울. 동시에 소피의 잠든 모습을 훔쳐보는 로맨틱함을 간직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피는 젊은이의 열정과 할머니의 지혜로움을 모두 갖고 있다. 60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적이 없다"는 소피의 말에서 "나이 듦"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마음가짐에 따라 30대, 40대 또는 10대로 돌아가는 소피의 얼굴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이 둘의 사랑은 따뜻하다. 하울과 소피가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 뒤 하늘을 두발로 걸어다니는 장면에는 비행기 같은 기계의 힘 없이 오직 서로의 팔에 의지해 중력을 거스르는,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하야오 감독 작품 최초의 키스신도 볼 수 있다. "키스신"보다는 "뽀뽀신"에 가깝지만 둘의 사랑을 그려내기에는 충분했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관심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단계가 조금은 서툴러 보인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이 될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을 걸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 마법을 푸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니까 말이다. 상영시간 119분.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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