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다섯은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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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다섯은 너무 많아
  • 윤종원
  • 승인 2005.11.1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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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가출소년 동규는 동거녀가 있는 친구집에 얹혀 산다. 용돈을 벌기 위해 일회용품 신고 포상금에 도전한 동규는 30대 처녀 시내가 일하는 도시락전문점을 촬영하다 그만 시내가 던진 돌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진다. 시내의 단칸방에서 깨어난 동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을 하며 시내에게 들러붙는다. 마음 약한 시내는 동규의 기억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며 그의 막무가내 동거를 묵인한다.

한편 시내와 동규는 라면집에 들렀다가 악덕 사장 만수의 횡포에 월급을 떼어먹힌 종업원 영희를 만나게 된다. 시내는 돈이 없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조선족 처녀 영희마저 집으로 데리고 와 보살핀다. 그런데 악덕 사장인 줄 알았던 만수가 알고봤더니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길거리에 나앉은데다 실은 영희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만수마저 시내의 방으로 들어온다.

주인공은 네 명. 4평 남짓한 단칸방에 함께 살기에는 무척 많은 숫자다. 그래도 이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어 몸을 누이고 마음도 누였다. 진짜 피붙이에게서는 찾지 못했던 위안을 서로에게 찾으며 하나의 새로운 가족을 만든 것이다.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족이라는 얘기.

그런 점에서 제목이 대단히 정겹다. 방의 크기를 볼 때 네 명도 대단히 불편한 숫자지만 이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다섯은 너무 많을지도 모르지만 넷까지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뜻. 그러나 동시에 식구가 말 그대로 다섯이 돼도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짐작케 한다. 아흔아홉칸 집에 산다고 행복하지 않듯, 서로의 사이에 마음을 기댈 공간이 있다면 4평 단칸방도 운동장처럼 여겨진다.

영화에는 양념이 전혀 없다. 안슬기 감독이 "순박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누차 강조했듯, 영화는 전반적으로 무척 담담하다. 마치 무심하게 뚝뚝 무를 썰듯 상황이 이어진다. 물론 제작 여건이 열악한 독립영화이기도 하지만 사실 대단히 황당한 상황이 튀지 않게 이어지는 것은 이러한 감독의 순박한 태도 때문이다.

황당함이 억지로 이어져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이지만 군더더기를 철저히 배제한 선택이 그러한 부작용을 방지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착각 아닌 착각도 들게 된다. 가난은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도 하는 것.

방의 주인이자 갈 곳 없는 세 사람을 보듬는 시내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큰 누나의 이미지이자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하나의 가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희생적인 "가장"이 구심점이 되야 함을 상징한다. 특히나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일회용 카메라 같은 이들의 인생은 막판 성장을 하고 한데 모여 정식 사진 촬영을 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그늘진 인생에도 볕들 날을 준 감독의 배려.

안 감독이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까닭에 겨울방학 동안 20일간 "번개" 촬영으로 만든 영화는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디지털 장편영화 사전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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