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경보 남발로 양치기 소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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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경보 남발로 양치기 소년됐다
  • 윤종원
  • 승인 2005.10.04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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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에서 유발된 변종 독감이 전세계적 역병이 될 경우, 최대 1억5천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발언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29일 유엔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으로 임명된 WHO의 고위관리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의 이같은 발언이 부른 파문에 대해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발언은 "조류독감에 적극 대처하지 않을 경우 대역병으로 번져 500만명 내지 1억 5천만명까지 사망할 수도 있다.우리가 어떻게 대비하는가에 따라 사망자수가 1억5천만명으로 갈지, 500만명으로 갈지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돼있다.

세계보건기구의 딕 톰슨 대변인은 파문이 퍼지자 30일 유엔 유럽본부 출입기자를 상대로 한 브리핑을 통해 WHO의 공식적인 인명피해 예상치는 200-740만명이며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톰슨 대변인은 방역 전문가들이나 WHO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수치는 모두 추측이며 나바로 박사의 발언도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범위를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말해 발언 자체에 대한 질책은 피해가는 모습이었다.

그는 WHO의 공식적인 예상 인명피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각국이 백신과 치료제를 비축하고 비상방역계획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임을 아울러 강조했다. 나바로 박사의 발언도 이런 취지라는 뉘앙스였다.

톰슨 대변인은 또 변종독감이 전세계적 역병으로 번질 때까지는 아무도 그 치명도를 알 수 없다면서 "(기자) 여러분들이 (각종 예상수치에서) 어느 것이든 고를 수 있지만 우리로서는 더이상 소동에 말려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변종 조류독감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할 경우의 피해 범위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치는 최소 200만명에서 최대 3억6천만명에 이를 정도로 편차가 크다. 이 가운데는 나바로 박사가 언급한 "1억5천만명"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에는 WHO 서태평양지역본부(WPRO) 관계자가 1억명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이것이 WHO관계자에게서 나온 추정치로는 최고였다.

물론 이번 파문은 무엇보다도 언론에서 피해 범위의 상한선만을 대서특필한데서 비롯된 것. 하지만 WHO를 자주 접촉하는 제네바 상주 특파원단 사이에서는 WHO관계자들이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조류독감의 감염과 인명피해에 대해 아시아 지역에서 부풀려진 수치가 나올 때마다 WHO측은 항상 전문연구기관에 의한 정밀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며 조심스런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가 경계를 주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들어서는 너무 자주 경보 발령하고 있는 감이 짙다. 또 학자들이 쏟아내는 추정치를 여과없이 인용하는 것은 책임있는 기구로서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 제네바 주재 언론인들의 대체적 시각.

30일 주제네바 한국 대표부가 마련한 개천절 축하 리셉션에 참석한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WHO본부나 대륙별 지역본부에서 자주 "늑대가 온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결과적으로 양치기 소년이 된 셈"이라고 답했다.

방역전문가들은 대역병의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한 피해를 산출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정확한 피해 범위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염률과 치사율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계절적인 유행성 독감의 감염률은 최소 5%에서 최대 20% 정도이고 치사율은 1%를 넘지 못한다. WHO에 따르면 해마다 전세계에서 유행성 독감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25-50만명 정도다.

지난 20세기에 유행성 독감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경우는 모두 3차례. 192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는 4천만명, 치사율은 2.6%였다. 1957년 유행성 독감은 이보다 턱없이 낮은 200만명이었고 1968년에는 100만명이 숨졌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토대로 향후 변종 조류독감이 전세계적 역병으로 번질 경우에 감염률은 25-30%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치사율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여부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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