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conomist Intelligence Unit : EIU)가 연구를 진행한 '한국 헬스케어 IT의 미래 백서'는 EIU가 진행한 개별 인터뷰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인터뷰에는 대한병원협회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을 비롯해 김석화 서울의대 성형외과 교수(한국u헬스협회 부회장), 이신호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산업본부 본부장,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연세의료원 의료원장, 최병호 심평원 심사평가연구소 소장, 지식경제부 등 헬스케어 IT 관련 전문가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이 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어느 잣대로 보나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의료보험제도를 갖고 있다고 운을 떼고 있다. 전 국민이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고,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으며, 환자들은 다양한 전문의로부터 최첨단 진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다만 의무가입이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와 환자본인부담금으로 충당되는 한국 의료보험제도가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안심하기는 어렵다고 이 백서는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까지 한국 의료제도의 미래가 현재까지 성공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이고 있다. 인구는 급격히 고령화되고, 전체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65세 이상의 의료비 지출은 향후 10년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의료보험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
또 고령화로 인해 암이나 당뇨와 같은 많은 치료비를 수반하는 만성질환이 증가하면서 한국인의 질환 구성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만성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은 50%로 높아, 많은 만성질환자들이 치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것. 특히 만성질환치료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모니터링을 요하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이 백서는 지적했다. 현 시스템에서는 환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낮은 행위별 수가에도 불구하고 기본검사가 불필요하게 중복돼 실시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백서는 한국이 헬스케어 IT를 충분히 활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 특히 의료서비스 제공자 간 정보를 공유하고, 원격 모니터링과 진단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준비가 돼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무선 브로드밴드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가전분야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의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의료서비스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한국 의료 IT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취지에서 EIU의 백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한국정부가 2004년부터 박차를 가해 온 의료정보 표준화 프로젝트는 정부가 ‘연결된 의료서비스(connected healthcare)’로부터 기대되는 비용절감과 품질개선 등의 효과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전자의무기록(EMR)과 전자처방전달시스템(OCS), U-헬스와, 원격진료와 같은 몇몇 시범사업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정보 프로젝트의 상당수가 시범 단계에 머물러 있고, 의료계나 민간부문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같은 실패의 이유가 무엇이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EIU는 정부, 의료계 그리고 학계의 여러 의료 전문가와 의사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백서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과 연구진의 분석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그 결과 헬스케어 IT의 폭넓은 도입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규제개혁의 속도 △의료기과 간의 상반된 입장 △의사와 민간투자자를 위한 유인책 부재 △폭넓은 환자 수요의 부재 등이 지목됐다.
규제개혁 속도의 경우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많은 의사와 전문가들은 규제개혁이 지체됨에 따라 헬스케어 IT의 포괄적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국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의 대면진료만 인정하며, 의사가 원격으로 상담하거나 진단하는 행위는 금하고 있다. 또 의료정보는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기관을 벗어나지 못하며, 환자정보공유시스템은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며, 단기간 안에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상대적으로 자금이 많고 많은 환자들이 내원하는 대형병원들은 혁신적인 헬스케어 IT 도입에 폭넓게 찬성하고 있으며, 이미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수적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은 규모의 의원과 병원들은 이 기술이 외래환자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을 염려해 도입에 회의적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한병원협회와 의사협회에서는 회원들 간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사와 민간투자자를 위한 유인책 부재도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의료정보표준화와 원격진료를 통해 누릴 수 있는 단기 혜택이 작은 반면, 이를 위해 필요한 투자비용은 높아 합리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또 이미 포화상태인 대형병원 만이 이러한 기술을 도입할 수 있어 의료서비스 제공에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규모 의료기관들은 정부가 필요한 투자비용을 충분히 보조하지 않고 있다고 불평한다. 또 의료보험의 상당부분이 비급여라는 사실은 의사의 헬스케어 IT 채택 가능성을 더욱 감소시킨다. 정부가 보건의료산업을 성장산업으로 개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규제 측면의 이슈 그리고 기술 도입이 보편적으로 이루지지 않고 있는 상황은 민간투자를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혁신적인 헬스케어 IT가 특히 만성질환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러한 혜택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을 통해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러한 치료에 만족했다고 보고했고, 본 인터뷰에 참여한 의사들은 치료를 받은 대부분의 환자가 치료에 들어가는 추가적인 비용을 낼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환자 수요 없이는 헬스케어 IT 도입을 가로막는 법적, 그리고 기타 장애물을 해소하기란 어려울 것이며, 대중적인 지지와 민간투자를 유인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헬스케어 IT를 관장하는 정부 전담기구의 설치 △파일럿과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의료인의 참여 △환자의 참여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인터뷰 응답자들이 한국이 이 분야에서 진전을 보이기 위해서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정보기술 국가조정국(Office of the National Coordinator for Health Information Technology)이나 호주의 e-헬스 전환청(National eHealth Transition Authority) 또는 다른 국가의 유사 기구와 같이 헬스케어 IT 만을 전담하는 정부기관을 반드시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이들도 캐나다의 헬스인포웨이(Canada's Health Infoway)와 같이 헬스케어 IT를 활성화시키고 다양한 집단 간의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이러한 전담기구는 그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서로 다른 정부기관들이 보일 수 있는 이견을 좁히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의료인의 참여 유도를 위해서는 파일럿과 인센티브 제공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술 촉진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많은 의사들이 신기술의 혜택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헬스케어 IT 옹호자들은 정부가 여러 가지 임상시험과 시연을 통해 관련 집단의 참여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규모 의원들은 환자 의뢰와 재정적 인센티브를 통해 유인하고, 의사자격 평가의 일부로 IT 교육을 의무화할 것을 제안한다.
또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는 민간 부문이 경쟁적으로 주도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 및 IT 분야의 표준 구축은 정부가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기술 도입의 유효성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선전하기보다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 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헬스케어 IT에 대한 홍보가 커뮤니케이션과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오는 등의 혜택에 초점을 맞춰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환자 수요가 증가하면, 민간투자자에게 사업의 성공가능성을 홍보할 수 있게 되고, 기술도입을 가져올 수 있는 법적 변화를 위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앞서 나라들이 그랬듯 한국 또한 헬스케어 IT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기술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것 그 이상이며, 신기술이 가져오는 효율 측면에서의 잠재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과 시스템을 최적화해야 한다. 호환성 확보 측면에서는 한국이 처음부터 국제 표준을 준수함으로써 미래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백서에 언급된 장애요소와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당면한 어려움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자건강기록(EHR)의 평생관리에 대한 기준에 민간, 업계, 학계 모두가 합의할 수 있도록 이들과 ‘지속적인 대화의 창’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해관계자들 간의 연구개발을 증진하고 협업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도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미래 지속가능성은 이러한 노력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