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코믹뮤지컬 구미호 가족
아마도 "구미호 가족"은 추석 극장가에서 가장 특이한 영화가 될 듯하다. 1차적으로는 소재와 배우들의 조합, 장르적인 특성에서 그러하며, 2차적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의 반응 역시 특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웃기고 울리는 추석 극장가에서 이 영화는 "구미호"로 승부를 건다. 너무도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네 명의 구미호 가족이 그들을 구원할 인간의 싱싱한 간을 얻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소재의 차별화는 그 응용에서도 이어진다. 구미호, 즉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는 대개 사람을 홀리는 악한 요물로 묘사되며 성별을 따지면 암컷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딸 등 구미호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이다. 덩치 큰 베테랑 연기자 주현이 구미호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인 것.
여기에 이들 구미호는 전설 속 무서운 존재와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다. 그러니 인간을 무작정 해치지도 않지만, 그들을 홀리는 것조차 제대로 못한다. 그저 천 년이 되는 날에 먹을 인간의 간을 네 개만 확보하면 되는데, 그것조차 녹록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에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전설 속 구미호 캐릭터를 비튼 설정은 달리 보면 그 사이 인간이 그만큼 영악해진 탓이라는 것. 예전에는 인간이 순박하고 티끌 없이 순수한 존재였다면 현대 사회의 인간은 웬만한 "유혹"에는 콧방귀를 뀔 만큼 때가 많이 묻었다. 그래서 어쩌면 구미호는 그대로인데 인간이 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미호가 무능력(?)하게 보일 수 있는 것.
뮤지컬을 표방하는 이 영화는 이러한 구미호 가족의 우스꽝스러운 소동에 노래와 춤을 곁들였다. 주현, 하정우, 박시연, 박준규 등 주연배우들은 각자 한두 곡씩을 소화하며 숨은 가무 실력을 뽐냈다. 특히 하정우는 발군의 노래 실력을 과시해 눈길을 끌며, 주현 역시 쉽지 않았을 도전에 무리 없이 안착했다. 또 박시연은 개봉 후 이 영화로 인한 최대 수혜자가 될 듯하다. 그동안 가려져 있던 그의 미모와 매력이 200% 이상 발휘됐기 때문. 그녀의 모습은 시종 눈이 번쩍 뜨이게 어여쁘다.
천 년 되는 날을 한 달 남겨둔 시점에서 이들 구미호 가족은 인간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 나타난다. 그리고 둔갑술을 무기로 서커스장을 개업한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서커스장에는 파리만 날리고, 각자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사람을 홀리려는 작업 역시 성공률 0%를 기록한다.
그러던 와중에 채권자들에게 쫓겨 우연히 서커스장에 온 사기꾼 기동(박준규 분)이 첫눈에 큰 딸(박시연)에게 반한다. 이를 안 아버지(주현)와 아들(하정우)은 "이게 웬 떡이냐"며 둘을 강제 합방시키고 기동을 포섭한다.
한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토막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구미호 가족이 의심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커스 단원을 모집했더니 치매에 걸린 노인, 마누라가 도망간 병자, 자살 미수 처녀만이 들어온다.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은 물론 매너리즘을 비켜가며 새로운 시도를 한 점이다. 또 발칙한 아이디어만큼 곳곳에 공들인 흔적 역시 포착된다. 대치하던 시위대와 경찰이 갑자기 비보이로 둔갑, 댄스 경연을 펼치는 장면이나 가족이 순간순간 구미호로 둔갑하는 모습 등은 시선을 확 붙든다. 배우들 역시 모두 호연을 펼쳤다.
그러나 욕심이 다소 과했다. 보여줄 것이 많다보니(많다고 생각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툭툭 끊어지며 커다란 줄기를 이루는 데 힘겨워보인다. 에피소드 혹은 장면마다 이야기를 하다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때문. 영화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아 초반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고양되지만, 그 많은 것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분절되면서 소재의 참신함과 풍자 정신도 기대만큼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추석 극장가 혈전에 이처럼 참신한 작품을 뚝심 있게 내놓는 제작사 MK픽쳐스의 진정성은 분명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거시적 관점으로 영화를 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작품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영화계를 살찌우는 영화가 등장했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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