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의 서사시, 고래와 창녀
"고래와 창녀(The Whore and the Whale)"는 사랑 영화다. 목숨처럼 여겼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창녀의 가슴 아픈 사랑은 상처 입고 바닷가로 떠내려와 죽음을 기다리는 고래의 서글픈 운명과 닮았다.
남미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루이스 푸엔조 감독은 창녀와 고래의 유사한 처지를 씨실과 날실로 엮어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로 완성했다. 배경이 되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해변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은 이들의 운명과 강렬한 대비를 이뤄 슬픔을 배가시키고, 강렬한 탱고 선율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스페인 여류소설가 베라(아이티나 산체스 기요)는 우연히 보게 된 스페인 내전 사진첩에서 한 아르헨티나 참전 군인의 부치지 못한 편지와 사진들을 보고 흥미를 느낀다. 새 작품을 구상 중이던 그녀는 이를 소설 소재로 쓰겠다는 생각에 사진 속 여성 로라(메세 로렌스)의 사연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그러나 베라는 현지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고 오른쪽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던 중 같은 병실에 입원한 한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서 우연히 로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영화는 사랑하는 남자 에밀리오(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에 의해 섬의 포주에게 팔린 로라의 삶을 베라가 추적으로 형식으로 진행된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로라나 유방암 수술로 여성성을 상실했다며 절망하는 베라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 감독은 베라와 로라의 삶을 중첩하면서 시대적 배경인 1933년과 2003년을 오간다.
1933년 파타고니아 해안가 섬에는 애인이 떠난 뒤 마약과 과도한 매춘에 망가진 로라가 있다. 그녀는 밤마다 울려 퍼지는 탱고 선율에 몸을 맡기며 희망 없는 삶을 영위한다.
남편과 헤어진 뒤 유방 제거 수술까지 받은 베라는 남자들을 오가며 몸을 섞는다. 그녀가 추적하는 로라의 삶만이 베라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영화는 탄탄한 줄거리에 와이드 화면으로 찍은 파타고니아의 코발트빛 바다,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감미로운 탱고 춤사위와 음악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고래와 창녀"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아르헨티나 영화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풍경과 음악, 춤 등은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관객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남미의 흥취에 취하고 싶은 관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다.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를 소재로 한 푸엔조 감독의 정치영화 "오피셜 스토리(The official story)"와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을 듯. 1986년작 "오피셜 스토리"는 그 해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평론가협회 미술감독상과 촬영상,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이미지영화제 촬영상 등을 받은 "고래와 창녀"는 13일 영화상영관 CQN명동에서 단관개봉한다.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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