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학병원장이자 현재는 서울 관악구 소재 관악이비인후과 대표원장으로서 갑상선-두경부 분야 전문가인 의사수필가 최종욱 전 고려대 안산병원장이 최근 수필집 ‘자신에 미쳐라’를 펴냈다.
의사수필동인 ‘박달회’ 회원으로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에 미쳐라’라는 이 책에서 35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의 세계관을 솔직 담백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부모님에 대한 회상과 누님, 그리고 환자와 이웃에 대한 사랑, 의사라는 자신의 직업과 그 과정에서 만난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며 온 세상에 온기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남 부러울 것 없는 대학병원 교수 출신의 의사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항상 낮은 곳을 응시하며 자신을 낮추고 한 톨의 밀알이 되어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글 곳곳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특히 처지가 어려워질 때면 무당이나 역술가를 찾기도 하고, 또 부적을 진료실이나 수술실 곳곳에 붙여두는 등 얼핏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소시민과 다를 바 없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진지한 의식의 내면을 숨김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내공’은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마저 자아낸다.
부끄러웠던 자신의 일상을 머뭇거림 없이 낱낱이 털어놓는 배짱과 때로는 소심하고 섬세하게 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와 함께 ‘어른’의 풍모를 닮아가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와 의료기관 폐쇄 등을 겪으며 경영의 어려움에 봉착했던 경험담과 수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환자의 자기관리 부실로 인한 부작용까지 환자탓을 하지 않고 감싸는 태도, 또 돌보던 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면 진료로 바쁜 시간 짬을 내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하고, 수술 중 사망한 환자의 경우 삼우제와 사십구재까지 챙기는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숙연함을 넘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독자들은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는 꽃들과 깊이 교감하고, 근심이 있거나 자신에게 수술 받은 암환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의 명복을 비는 글을 적은 연을 날려보내는 등 인간 최종욱의 면면을 이 책 구석구석에서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자기 자신의 일은 제쳐두고 남의 일 감시에만 집착하는 최근의 사회 현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간 발표된 원고 중 특별히 자신의 일에 미쳐 모두가 큰 뜻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관성이 있는 글들을 추려서 묶은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1부에서는 자신 있는 일에 미쳐보라는 내용으로, 허황된 것보다는 현실적 가치가 있고 자신이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부제로 글들을 묶었고, 2부에서는 혼신의 힘으로 임하라는 부제로 글들을 묶었다. 3부에서는 끝까지 도전하라는 부제 아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면 일들이 잘 성취된다는 희망의 글들로 묶어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술과 술자리를 좋아하고, C형 간염을 앓았지만 완치 후에는 주저주저하면서도 다시 술에 입에 대는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는 앞으로 두고두고 ‘매력적인 사람’을 연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이 잘 안 풀려 의기소침해지거나,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무심코 이 책을 다시 펼치면 근심이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자신에 미쳐라’는 두고두고 서가에 꽂아두고 틈만 나면 찾아 읽을 몇 안 되는 책 중 한 권이 될 것이다.
<도서출판 지누·172쪽·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