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두뇌게임 청한, 모노폴리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 떠오른다. 촘촘히 엮인 시나리오를 든든한 백그라운드 삼아 배우들의 호연을 무기로 내세웠으며, 교차 편집 등의 영화적 기술로 무장해 관객을 색다른 감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영화다.
"모노폴리"(감독 이항배, 제작 한맥영화)도 "범죄의 재구성"처럼 관객과의 두뇌게임을 신청한 영화다. 볼수록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며 길을 잃게 만든다.
소재와 그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참신하다. 그런데 도입부부터 관객보다 먼저 길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냉정을 가장한 감정의 과잉과 쉴새없이 깔리는 음악의 과잉이 거슬린다. 음악은 영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과장된 의미 부여의 몸짓이 버거운 듯 내내 겉도는 듯하다. 이렇게 느끼는 건 전편에 흐르는 구성요건 간의 "엇박자" 때문으로 보인다.
전국 1억개가 넘는 계좌에서 5조원이 넘는 돈이 인출되는 전대미문의 금융범죄가 벌어진다. 국정원은 용의자 경호(양동근)와 앨리(윤지민)를 즉각 체포하지만 돈과 주범 존(김성수)은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태어나자마자 수녀원에 버려진 경호는 컴퓨터 보안 전문가가 된다. 폐쇄적인 성격이 있는 그는 피규어(프라모델의 일종. 영화 만화 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인형) 마니아.
존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국정원에서는 최면 요법을 쓴다. 최면에 걸린 경호는 존과의 만남부터 이야기한다.
피규어 전문 숍에서 우연히 만난 존은 경호와는 달리 세상에 거리낄 게 없는 남자다. 대한민국 1% 상위 클럽을 목표로 이너서클 멤버와 함께 엄청난 돈을 굴리는 냉철한 인간이다. 앨리는 존의 여자이며 존이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한다. 심지어 성상납까지도.
존은 경호에게 지극히 우호적이다. 단숨에 그를 친구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존을 통해 보게 된 낯선 세상에서 경호는 이방인에 불과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존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투자를 회수해간 대기업 회장의 의문의 죽음, 규율을 어긴 이너서클 멤버를 자살을 빙자해 살해하는 모습 등을 보며 경호는 존을 벗어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존에게 엮인다.
존은 경호에게 엄청난 사건을 의뢰한다. 사건을 의뢰하며 만나게 된 휠체어 탄소년은 섬뜩하다. 몸은 소년이지만 그는 괴상한 어른 목소리에 냉혹한 성격이 있다.
어쨌든 경호는 존의 뜻대로 금융 범죄에 가담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소 폐쇄적이기는 했지만 소심한 경호에게 엄청난 범죄를 시킨 존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화는 나름대로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헤어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바꾸며 외양의 변화를 준 양동근의 연기는 언제 봐도 믿음이 간다. 김성수 역시 옴므파탈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슈퍼엘리트 모델 출신 신예 윤지민은 자신의 장점(몸매)을 한껏 자랑하는 데다 대사가 많지 않아 혹시 모를 단점이 보이는 걸 배제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영화를 즐겨 본 관객이라면 사건의 단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뭔가 어색한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를 뭉뚱그려 큰 그림으로 그려보면 곳곳에 허점이 노출된다. 빨리 눈치챈 관객은 그 이후부터는 엉성한 내용전개에 지루해지기 십상.
키덜트 문화를 소개한 영상은 키덜트 문화에 익숙한 세대의 감성을 안일하게 판단한 듯하다.
그럼에도 사건 발상의 신선함과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배경은 눈여겨볼 만하다.
사족. 입양아 앨리를 향해 국정원 여직원이 내뱉는 "넌 대한민국이 버린…"이라는 대사는 비록 짧지만 구태적 대사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6월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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