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맛 훼손한 다빈치 코드
긴장감ㆍ상상력 떨어지고 방대한 지식도 찾아볼 수 없어 긴장이 확 풀린다. 영화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 "
다빈치 코드"는 그저 흥행을 목표로 한 상업영화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다빈치 코드"는 개봉일인 18일 첫 상영시간에도 관람객이 극장의 절반 가까이 들어찰 정도로 뜨거운 관심 속에 드디어 한국에서도 공개됐다.
배급사인 소니픽쳐스가 도대체 왜 시사회도 갖지 않은 채 개봉했는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추측을 가능케 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원작의 종교적ㆍ문화적 충격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나 영화가 공개된 지금, 원작의 어느것 하나 만족시키지 못한 불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다.
물론 책을 보지 못한 관객이라면 영화 내용 자체가 스릴 있는 주제로 다가오겠지만 댄 브라운의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독자라면 그저 사건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며 심지어 원작의 주장마저 훼손하는 영화를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할 것.
원작에서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후손을 뒀고, 성배(聖杯)란 마리아를 뜻한다는 주장을 예시하기 위해 펼쳐졌던 방대한 예술작품을 영상을 통해 직접 만날 수 있을 기대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최후의 만찬"의 클로즈업 장면 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충분한 인문학적, 문예학적 설명이 뒤따랐던 소설과 달리 아무 의미 없이 카메라는 바쁜 발걸음으로 쓱- 한번 훑고 지나갈 뿐.
또한 기본 설정조차도 다르게 내놓았다. 물론 어느 소설이든 원작 그대로 영화화되지는 않지만 종교계의 압박과 일반인의 지대한 관심이 힘에 겨웠는지 소설 "다빈치 코드"의 파격적인 주장은 "예수가 마리아와 결혼해 후손을 뒀다"는 설정 외에는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축소됐다.
소피와 할아버지인 시온 수도회 수장 자크 소니에르의 갈등에 핵심적인 내용이 었던 성교를 상징하는 비밀 제의에 대한 의미는 단 두 컷으로 처리된 채 오히려 부모의 존재를 찾지 못하게 하는 "인간적" 수준의 할아버지와 손녀의 갈등으로 묘사했다. 소니에르가 소피의 친할아버지였던 원작과 달리 소니에르는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이 그저 예수의 후손을 보호하기 위한 시온 수도회의 수장으로만 설정됐다. 그러니 봉인된 크립텍스의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상세히 묘사됐던 할아버지와 손녀의 애틋한 관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교황청의 눈치를 봤다는 점은 오푸스데이의 아링가로사 주교가 왜 스승이라는 낯선 존재와 결탁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교황청 부분을 단 한 장면으로 묘사한 것에 그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두번째 크립텍스의 암호인 "A포프에 의해 묻힌 기사"를 풀기 위해 도서관에서 방대한 자료를 검색하며 긴장된 순간을 맞았던 소설 속 장면은 버스 안에서 휴대전화를 빌려 모바일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순식간에 "재기발랄하게" 풀어내버려 허탈함까지 느끼게 한다. 댄 브라운은 왜 이토록 기능 좋은 모바일 서비스를 몰랐던 걸까.
더욱이 치명적인 허탈함은 마지막 장면. 마리아의 관이 놓인 곳으로 설정된 루브르 박물관의 땅속까지 들어다보며 관을 보여준다. 관객의 상상이 펼쳐질 시간을 주지 않고 결론내리기를 좋아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무자비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톰 행크스는 적절하게 전형적인 미국인, 천재적인 교수를 소화해냈고 티빙 경역에 이안 매컬린, 파슈 국장 역 장 르노, 사일러스 역 폴 베타니 등 배우들이 무난하게 연기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일러스조차도 영화에서는 그 존재감이 훨씬 덜해 배우들이 영적인 느낌을 표현할 시간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사일러스가 육체적 고행을 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저작권자 © 병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