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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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히든
  • 윤종원
  • 승인 2006.03.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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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승리, 히든

작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작품이라는 타이틀은 역으로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실게임" "피아니스트" 등을 선보였던 미카일 하네케 감독은 사실적이지만 지극히 관념적인 영상을 통해 아주 사소한 행동이 얼마나 다른 이의 인생을 끝간데 없는 절망으로 빠뜨리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볼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대중적인 인기까지 있는 프랑스의 지식인 조르쥬(다니엘 오떼유). 어느날 집 앞에 누군가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놓고 간다. 일정한 지점에서 줄곧 조르쥬 집을 촬영한 것. 또 다시 비디오 테이프가 배달되자 조르쥬 뿐 아니라 아내 안느(줄리엣 비노쉬)도 긴장된다.

누가 이런 테이프로 장난쳤을까. 누가 앙심을 품었을까. 닭의 목이 잘려나가는 그림도 함께 오면서 조르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조르쥬의 6살때. 그는 집사로 일했던 부모를 모두 잃은 알제리인 소년 마지드를 모함한다. 조르쥬의 부모가 마지드를 입양하려 했기 때문이다. 마지드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영악한 조르쥬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마지드에게 닭의 목을 자르게 했다.

조르쥬는 낯선 집이 담긴 또 다른 비디오 테이프 속 길을 따라갔고, 마침내 마지드를 만난다. 마지드는 자신이 테이프를 보냈다는 걸 부인한다.

그 즈음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사건이 발생하자 조르쥬는 마지드 부자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아들은 그저 아무 연락없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을 뿐.

조르쥬는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며, 설사 그렇다 해도 마지드의 이후 인생에는 책임이 없다고 항변한다.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 분명한 마지드는 조르쥬 앞에서 스스로 목을 긋는다.

한 사람을 파국으로 이끌기가 얼마나 쉬운 지를 지켜보면서 관객은 자문하게 된다. "난 어떠했나".

영화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진행되는 일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뿐. 당신은 선입견이 없는 인간인가, 당신은 누구에겐가 상처를 준 적이 없는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에서의 식민 지배를 기꺼이 원했던 프랑스인의 이중인격에 대한 내부고발인 셈이다. 지배한 자 역시 상처뿐인 승리를 갖고 사는 것.

다니엘 오떼유와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는 수준급이다. 나약하고 비겁한 지식인의 두려운 심연이 드러나기에 충분할 만큼.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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