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재정 갈수록 악화..원인과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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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재정 갈수록 악화..원인과 대책
  • 이경철
  • 승인 2008.04.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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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박사는 "한국의 사회보장비 지출전망 및 시사점-사회보험을 중심으로"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건강보험의 재정전망을 암울하게 그리고 있다.

윤 박사에 따르면 국고보조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가정 아래 총진료비를 중심으로 장기 지출 추이를 전망한 결과, 진료비 수지적자가 2030년 40조원, 2050년 130조원, 2070년 23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대표적인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원인 = 건강보험재정이 건강상태를 지키지 못하고 나빠지고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인구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의료이용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노령화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 중심으로 질병구조마저 바꾸면서 건강보험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노인진료비는 2002년 3조6천811억원, 2003년 4조3천723억원, 2004년 5조1천97억원, 2005년 6조556억 원, 2006년 7조3천931억원 등으로 늘었다. 2002∼2006년 4년 사이에 노인진료비가 2배 증가한 셈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매년 평균 18만 명 느는 등 노인인구 급증에 따른 것이다. 2006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407만3천 명으로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8.6%에 이른다.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라 고혈압, 당뇨 등 대표적 만성질환의 건강보험 진료비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재용 박사팀의 "우리나라의 만성질병 관리체계 구축방안 연구"에 따르면 고혈압 총진료비는 2005년 3조2천439억원으로, 10년 전인 1995년의 3천593억원보다 9배 정도 증가했다. 당뇨는 같은 기간 2천142억원에서 1조7120억원으로 8배 가량 늘었다.

급격한 인구구조 및 질병구조 변화 못지 않게 현재의 의료공급과 소비구조가 낭비적이라는 점도 건보재정 악화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의사의 의료행위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는 과잉의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이 제도는 의사수나 병원수가 증가하거나 공급되는 의료서비스가 늘면 늘수록 건강보험에서 요양기관에 지급하는 급여비가 증가하도록 설계돼 있는 등 의료공급자의 모럴 해저드를 유인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중증질환보다는 가벼운 질환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점도 건강보험 가입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조장해 건보재정 누수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에서 약값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해마다 불어나고 있는 것도 건보재정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총진료비가 2005년 24조6천575억원에서 2006년 28조5천714억원, 2007년 32조2천33억원으로 급증하는 것과 맞물려 이에 못지 않게 약제비 지출규모도 2005년 7조2천억원, 2006년 8조4천억원, 2007년 9조5천억원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밖에 요양기관의 진료비 부당청구와 국고지원 부실, 비효율적인 건강보험공단 관리운영 등도 건보재정에 주름을 가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책 = 건강보험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일차적으로 들어오는 돈보다는 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공급자들은 건강보험 가입자, 즉 국민이 보험료는 적게 내면서 의료혜택은 더 많이 누리려고 하는 데서 건보재정악화의 근본 원인을 찾고 있다. 흔히 "저부담-저수가-저급여"로 표현되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료를 대폭 올리든지, 국고지원을 크게 늘려 건강보험의 재정창고를 든든하게 채워야 한다고 의료공급자들은 주장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재정으로 들어온 총수입은 2006년 22조3천878억원, 2007년 25조2천697억원에 그친 반면, 지출된 총비용은 2006년 22조4천623억원, 2007년 25조5천544억원으로 수입보다는 지출이 컸다. 당기적자를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험료 인상은 건보재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국민의 거부감 때문에 정부당국자로서는 선택하기 쉽지 않은 카드이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당국은 보험료에 손을 대기 보다는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줄이는 지출구조 합리화 쪽에 힘을 쏟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먼저 의료공급 측면에서의 낭비적 요인를 막기 위해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리 정해진 표준화된 진료비만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나 환자당 일정액의 진료비를 주는 인두제 등 다양한 진료비 지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해마다 치솟는 건강보험 약제비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 건강보험재정의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 신약만 보험약으로 인정하는 선별등재방식을 골자로 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2007년 1월부터 전격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건강보험공단의 관리운영 방식에 내부경쟁체제를 도입해 사업경비를 절약하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정한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의약품과 치료재료를 구매한 의료기관에는 장려금을 주지만, 병의원이나 약국 등 요양기관이 허위부당 청구를 하다 적발될 경우 명단을 공개하는 등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는 정책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안정위원회를 꾸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재정안정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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