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비대위원장 “의사수 늘면 의료비용 급증, 건보 지속가능성 위기 초래”
8개월째를 맞은 의료대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료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향후 허심탄회하게 접점을 줄여나가자는 데 의견을 일치시켜 다소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적어도 ‘희망의 싹’을 심는 데는 성공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유미화 상임대표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비서관, 보건복지부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강희경 위원장과 하은진 위원(신경외과)이 10월 10일 서울대 의대 융합관에서 ‘의료 개혁,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장상윤 수석은 기조 발제를 통해 의료계는 개혁의 방향에는 동의하면서 의사수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지만 정부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부족한 의사수를 추계했다고 강조했다.
장 수석은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의사면허와 활동 등 수요와 공급을 정부가 관리하고 있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 정밀하게, 오차 없이 전망이 가능하다”며 “2035년까지 사실상 최소 2만명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5년간 2천명은 필요 최소한의 숫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사수 증원을 해도 의사들에 대한 처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향상될 것”이라며 “소득이 늘어나면 의사 수요가 더 늘어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며 특히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명 이상 늘어나게 돼 의사의 손길이 더 필요한 만큼 의료개혁은 의사들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의료 현장을 조금만 더 관찰해 보면 의사, 특히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급 의사가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요인이 많다”며 “예를 들어 의사도 급속히 고령화되고 지나친 전공의 세분화로 전문의 1인당 담당 영역이 축소되는 현상, 피부 미용과 같은 비필수 분야로의 인력 유출이 가속화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라며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장상윤 수석은 의료개혁에 있어서 큰 원칙의 변화는 그간 건보재정에 의존해 왔던 필수·지역의료 살리기에 내년부터 국가 재정이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건보재정은 연 단위로 정산을 한 후 다음해 새로운 요율을 정하게 돼 있다”며 “현재 적립금이 약 28조원 정도 있는데 그 적립금을 잘 활용하고, 향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2~2.5%로 건보요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소득이 높아지면 건보재정은 늘어나게 돼 있는데 건보요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급격한 증가나 급격한 부담을 하지 않고 재정을 보완적으로 사용해 유지해 나가는 등 재정 운영을 잘 해나가겠다”고 했다.
장상윤 수석은 비급여의 완전 급여화 요구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의료는 완전 시장경제체계가 아니다. 가격은 건강보험의 틀에서 규제를 하고 있는데 그 규제의 틀에서 벗어난 것이 비급여”라며 “비급여를 다 없앨 수는 없다. 비급여가 있어야 가격통제하에 새로운 의료기술 유인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실손을 활용해 무한하게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용 성형의 경우도 마찬가지. 정부는 비급여 항목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의대교육 5년 보도와 관련해서는 정부는 애초에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의과대학들이 조기졸업할 수 있는 예외규정을 활용해 공백기 메꾸길 원한다면 자율적으로 승인해 줄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학생들은 휴학을 권리라고 말하는데, 권리가 아니다”며 “개인적이고 불가피한, 예측불가한 상황이 생겼을 때 학교에서 인정해 주는 것이 휴학이지 일시에 모든 학생들이 수업이 불가한 상태로 휴학을 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해 방청석으로부터 야유를 들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원장은 기조발제에서 의사수를 늘리면 급증하는 의료비용으로 인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위기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 우려했다.
강 위원장은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이고 건강수명을 늘린다면 의사수는 지금도 충분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우리나라는 배후 진료의 기반이 되는 신경외과 의사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다”며 “의사수가 과연 적은가? 의사수가 늘어나도 지방은 안 늘어난다. 또 의사수가 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우리나라 청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의사를 늘리면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강희경 위원장은 2030년에는 GDP 대비 의료비가 16%, 2035년에는 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1차 의료 체계를 강화해 환자 중심 의료시스템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또 필수의료 보상을 강화하고 의료소송 여건도 개선해 달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늘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고자 한다”며 “지속가능하면서 환자 중심, 그리고 뜻을 모아서 가는 의료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장상윤 수석은 “오늘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의료개혁을 통해 의사는 환자와 같은 마음으로 질병과 싸워 이기고, 정부는 의사들이 충분히 의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오늘 ‘희망의 싹’을 보았으며,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로 어렵게 싹튼 희망의 결실을 맺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희경 위원장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한시조직이어서 의료계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따라서 의개특위에 참여할 의사가 없고, 완전하게 오픈된 자리에서 의정이 논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에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굉장히 많아 세계 톱일 것이라며 그 분들이 응급진료를 안 하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송과 수가 또 배후진료가 문제인 만큼 그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날 토론에서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숙론이란 열린 논의로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을 접목해 더 나은 결론을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의료 위기에 있다는 진단. 현 비상진료 상황에 대해 의료계 일부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던 우리 의료가 한 번에 망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비상진료 상황이 종료되면 원상복귀가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정 단장은 “의료계는 물론 국민도 아니라고 할 것”이라며 “실제로 코로나19 때 의료이용이 줄고 합리화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급속도로 원상회복됐다.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의료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10년을 마지막 기회로 인식하고 2035년까지 10년의 골든타임 동안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서 의료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종사할 수 있고, 수련의도 보다 나은 환경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했다.
정경실 단장은 “의개특위에서 우선 급하게 상종 구조전환부터 시작했지만 사실 일차의료 활성화가 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지역주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통합적으로 관리가 가능하고, 중증은 즉시 큰 병원으로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를 강제적으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게이트키퍼라기보다는 내비게이터 역할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 많은 전문의들이 단과를 개설하고 통합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한 일차의료를 하고 있지 않아 일차의료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며, 일차의료가 가능한 인력 양성부터 해서 심층적으로 진료를 할 수 있는 수가구조 개편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2차와 3차병원과의 협력 및 패스트트랙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으며 의개특위에서 이런 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경실 단장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고 거듭 호소했다.
그는 이밖에 의사수가 늘어나면 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과거에 그런 연구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의사수가 늘어난다고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증거는 없다는 게 최근 연구 경향”이라며 “의사가 부족한 곳에 의사가 늘어서 의료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면 필요한 곳에 부담하는 것이다. 즉, 쓸 데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실 단장은 “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은 양에서 질로 바꾸자는 것”이라며 “의개특위에서도 합리적인 의료이용을 할 수 있도록 병행진료 제한과 과도한 비급여에 대한 실손보험 이용 제한 장치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연말에는 금융위원회에서 실손보험 개혁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하은진 위원은 “오늘 이 자리는 승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숙론을 하는 자리로 기획했다”며 “졸속 합의는 결국 몇 년 내에 다시 위기를 초래할 것인 만큼 환자 중심의 지속가능한 의료가 목표여야 하는 만큼 재정도 안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 위원은 이어 “미래세대를 위한 배려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K-의료는 싸고 좋은 시스템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수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국민과 정부, 의료계가 한 팀이 되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 혼란이 심할 것인 만큼 유기적인 네트워크 필요할 것이라는 조언도 했다. 의료전달체계 내의 의료기관이 건보재정 절감 시 환자나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더 원활한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방안도 제시했다. 특히 실손보험의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상황이 다른 만큼 보장성을 충분히 유지해 주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은진 위원은 또 응급실 뺑뺑이의 경우도 시스템의 문제지 의사 수의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의료인력이 급격하게 줄어든 영향이 있지만 이전의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인력보다는 시스템 문제인 만큼 병원이 병상을 비워놓을 때와 필요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