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문제 원인을 의사인력 부족으로 모는 것은 의료사회화 이해 부족이 초래”
“의사소득 증가는 비급여 확산의 결과지 의사수 부족에서 찾는 것은 견강부회”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게 된 원인은 200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0년 7월 의료보험조합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하고 의약분업을 실시한 이후 1977년 7월 사회보험방식의 의료보험제도 원칙이 무너지면서 시작됐다는 것. 무리하게 추진한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으로 2001년 보험재정이 파탄나자 대규모의 국고지원이 이뤄졌고, 의약분업에 항의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2004년 의과대 입학정원을 351명 줄이면서 2024년의 의료파동을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의약분업은 그 전까지 약국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반드시 의원이나 병원을 거쳐야 하도록 절차가 달라져 의사수가 더 늘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줄였고, 그 이후 증원이란 보완책도 없이 지금까지 버틴 결과가 오늘날 의사부족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3월 12일 이슈페이퍼 60호 ‘의과대 입학 증원과 의료파동’을 통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은 근본적인 원인 분석이 빠진 채 대증요법으로 현재의 위기만 넘겨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의사 부족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OECD 국가 가운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적은 국가로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현재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을 어떻게 의사부족으로 치부할 수 있나”라며 “따라서 오늘의 문제는 단순하게 의사인력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문제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인 의료보장제도의 출발에서부터 찾아야 영속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해외 의료보장국이 의사인력과 같은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없는 것은 사회보험방식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해 의료의 사회화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즉, 우리나라는 의료이용의 사회화만 하고 이용절차와 같은 다른 규제가 없어 모럴해저드에 의한 의료남용이 초래됐다는 설명이다.
이규식 원장은 “의료보장제도는 의료이용만 쉽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의료서비스 배분방법을 달리해야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의료보장제도가 없을 때는 서비스 배분을 시장에 맡기면 되지만 의료보장제도에서 의료서비스 배분을 시장에 맡기면 환자들의 모럴해저드로 인해 제도가 붕괴되기 때문에 가격과 무관한 필요도(needs)로 배분을 해야 하며, 이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의료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필요도는 가격이 아니라 그 나라의 인구구조, 상병구조, 의료기술이나 지식,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재정관리자, 즉 건보공단이나 정부가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물론 대부분의 의료분야 전문가들조차 의료보장을 단순하게 재정의 공동조달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의료서비스 배분을 의료보장제도가 없을 때와 동일하게 시장에서 결정했고, 결국 외래는 세계 1위, 입원일수는 세계 2위를 기록하는 등 오늘날 의료이용의 문제를 파생시키는 주원인이 됐다는 게 이규식 원장의 진단이다.
이처럼 의료의 과다 이용은 의료공급에 과부하가 걸리도록 해 병원이 분원까지 만들고, 지방은 이용자가 적어 개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것.
그는 “오늘날 벌어진 의료문제의 원인을 모두 의사인력의 부족으로 내모는 것은 의료사회화의 이해가 모자라서 벌어진 것”이라며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이 실행되면서 진료권을 설정해 의료의 지역화를 도모했고, 증가할 의료이용에 대처하기 위해 환자의뢰체계를 강력히 실행했지만 2000년 7월 건강보험통합을 전후해 이전 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문제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2000년 1월 제정한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공공보건의료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설립한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로 정의해 민간의료기관을 공공의료의 생산자에서 배제하고 공공의료기관과 재정 지원 및 세금 혜택 등에서 차별화하는 대신 정부의 관리에서 벗어나게 만들면서 의료를 ‘공공성이 강한 사적재화’로 간주, 규제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는 지적이다.
이규식 원장은 “미국이나 유럽의 의료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률로 제공하는 의료는 공공재로 간주하고 건강보험의료 역시 공공재가 되며, 서비스 배분도 시장이 아닌 필요도 접근을 토대로 배급제를 택하게 된다”며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은 의료의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는 당연한 것이며 의료의 배분을 시장이 아니라 정부 혹은 보험자가 책임지기 때문에 의과대학 입학정원의 결정과 같은 사항은 당연히 정부의 역할이 되지만 의료의 사회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공공의료를 공공병원의료로 인식한 정부이다 보니 의과대 입학정원을 놓고 의료대란이 초래된 것은 정책의 잘못이 초래한 자업자득과 같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1999년 2월 김대중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면서 제39조3항에서 급여서비스에서 제외되는 서비스, 즉 비급여서비스를 인정하는 틀을 마련해 의료기관의 영리화를 급속하게 촉발시켰고, 의료기관이나 전문과목 간 수익의 차이가 발생하게 됐다고 이규식 원장은 지적했다.
특히 1995년 8월 대진료권 철폐와 1998년 10월 중진료권 폐지 및 2004년 4월 KTX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면서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게 되고, 결국 오늘날 지역의료의 붕괴마저 초래했다는 것.
이와 더불어 민영보험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이 실손보험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등장해 의료이용의 과다와 영리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이 원장은 덧붙였다.
이규식 원장은 “의료계획이 없어 의료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의과대 증원을 놓고 벌어지는 오늘날의 의료파동은 예고된 참사나 다름 없다”며 “의사소득이 증가한 결정적 요인은 비급여 확산에 따른 의료의 영리화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며, 소득의 증가를 의사수 부족에서 찾는 것은 견강부회하는 꼴”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의사를 양산해 소위 낙수효과에 의해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출산율이 1.0 이하여서 지방에 환자가 없는데 누가 감히 개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는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출산 시대가 열린 일본에서도 같은 문제로 공립병원이 의료공백을 메꾸는 역할을 하지만 적자가 나는 공립병원을 무턱대고 설립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규식 원장은 현재의 의료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사회화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해 그에 합당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차제에 건강보험제도가 의료사회화를 초래한다는 점을 깨닫고 건강보험을 재정의 공동조달이라는 인식에서 나아가 의료공급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며 그 과제를 아홉 가지 제시했다.
우선 의료서비스 배분방법을 시장 수요가 아닌 필요도 접근으로 전환해야 하고, 의료사회화의 원칙인 의료기관의 영리화를 막기 위해 일본처럼 비급여를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하는 방안을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또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폐기하고 건강보험의료를 공공의료로 정의함으로써 모든 요양기관을 공공의료기관으로 취급할 때 일본처럼 비급여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규식 원장은 이와 함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계약제로 바꿔 건강보험수가로 환자 진료를 원하지 않는 병원은 영리병원으로 전환시키고 건강보험요양기관에 대해 공공·민간 구분 없이 세제혜택을 비롯해 수련의사 인건비나 연구비 등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영리병원 허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의료의 민영화라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도입이 의료의 사회화라는 개념만 확실히 실행한다면 몇 개 병원이 영리병원이 된다 하더라도 의료가 민영화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의료의 지역화 개념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진료권을 부활시킨다면 의료의 지역화와 의료이용 감소는 물론 필요도 접근도 가능하게 될 것이며, 정부가 민영의료보험의 관리·감독에 참여하고, 의사 업무의 일부를 PA나 방문간호사 등 다른 직종에 위임하는 정책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의료보장은 의료의 사회화를 초래하는데, 이를 거부한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유럽이나 일본에서 도입하지 않은 배경을 면밀히 검토해 정책을 펼 것을 제안했다.
이규식 원장은 “이 글은 의과대 입학정원 증원을 반대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작성하지 않았다”며 “현재의 의료파동을 현명하게 극복해 장기적인 정책방향을 제대로 정립한다면 2030년대 중반의 의료체계 붕괴를 막는 의료개혁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의 의료위기가 단순히 의사 부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의사부족으로 의사들이 고수익 이익집단이 된 것으로 여론을 몰아가서는 국론 분열만 일으킬 뿐 의료개혁은 멀어지게 될 것”이라며 “의사 부족이나 고소득은 건강보험을 도입하면 의료사회화가 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지적수준에 따른 의료정책에서 찾아야 하며, 정책 담당자나 의사들은 서로를 비난하는 일을 멈추고 어떻게 하면 의료개혁을 이뤄낼지 고민해야 하고, 국민들은 음모론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