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사고 10억 배상 판결…“전공의 지원율 반 토막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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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사고 10억 배상 판결…“전공의 지원율 반 토막 걱정”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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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의사회, 산부인과 옥죄는 각종 법원 판결에 우려
소청과 위기는 곧 산부인과의 위기…폐과 선언에 공감
출생 통보, 청구 프로그램 등 갖춰진 심평원이 맡아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임원진. ⓒ병원신문.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임원진. ⓒ병원신문.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가 내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반 토막 날 가능성이 크다고 호언장담했다.

지난달 31일 수원지방법원이 A 병원에서 출산 후 뇌손상을 입은 산모의 청구를 전부 기각한 1심 결과를 뒤집고 ‘병원 측은 산모에게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2심 판결을 내리면서 A 병원의 과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즉, 의료인이 의무를 다했음에도 무과실 의료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분만의 특성상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100% 보상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게 산부인과의사회의 요구다.

산부인과의사회는 4월 2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2023년 산부인과의사회 춘계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김재연 회장은 과거에도 이번 사례와 비슷한 사건이나 판결이 날 때마다 그다음 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처참하게 하락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재연 회장은 “10여 년 전 인천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어난 분만사고에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금고형이 선고되자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50%로 급감했다”며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이 났지만, 산부인과 기피 현상은 쉽사리 되돌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수많은 지원 정책을 통해 가까스로 지원율이 80% 수준까지 회복되긴 했으나, 이번 수원지법 2심 판결로 인해 또다시 반 토막 날 것이라고 우려한 김재연 회장이다.

김 회장은 “인턴과 전공의들 사이에서 산부인과 지원은 미친 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내년 전공의 지원 기간 전에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다면 충격이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충분한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재원을 의료기관이 분담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수술 기피 현상,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율 급감 등을 부추기니 정부에서 보상재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며 “정부, 국회, 법원 모두 전향적인 자세로 판단해야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부언했다.
 

병·의원에 출생 통보 떠넘기면 안 돼…심평원 시스템 이용해야

이날 산부인과의사회는 김미애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일부 개정 법률안(출생 통보제)’이 병·의원의 부담을 가중할 것이라며 차라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해당 법률안에는 출생증명의 의무를 산부인과 분만 의료기관에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출생 통보제는 출생 신고 의무자의 신고와는 별개로 출생이 있었던 의료기관이 시·읍·면의 장에게 모든 출생아의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제도로, 통보받은 지자체장은 신고 의무자의 출생 신고 여부를 확인한 후 신고 미이행 시 직권으로 출생기록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재연 회장은 “병·의원은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것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며 “차라리 국가기관인 심평원에서 청구 프로그램과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등 기존 시스템을 이용해 읍면 동사무소에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회장은 “가족관계 등록을 하지 않는 산모들을 위한 사회보장망을 만들자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현재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심평원이 못하겠다고 거부할 경우 귀책사유가 병·의원에 자동으로 떠넘겨지는 불합리함이 있는데, 법안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산부의사회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에 대해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며 공감을 표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위기가 곧 산부인과의 위기라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며 “개원가에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면 분만 병원은 소청과 의사들을 구할 수 없게 되고 고위험 임산부들은 대부분 상급병원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분만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숙아들의 목숨을 적절한 응급조치를 통해 살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안전한 출산과 산부인과를 위해서라도 소아청소년과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산부인과의사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돼가는 만큼 산부인과 분만 정책수가 중 ‘감염병 정책수가’를 ‘인적·안전 정책수가’에 포함하고, ‘지역수가’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하며, 종합병원에 산부인과를 필수적으로 개설하도록 강제하기 전에 저수가 및 경영난에 허덕이는 종합병원을 살릴 방안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정책변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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