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횡령 사건에도 청렴도 1등급인 건보공단,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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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횡령 사건에도 청렴도 1등급인 건보공단, ‘왜?’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01.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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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 2022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청렴체감도·청렴노력도 모두 1등급
부패실태 평가에서 자체적발은 감점 요소 해당 안 돼…외부적발만 반영한 탓
의료계 일각, “취지 이해하나 청렴도 평가 신뢰성에 의문 품을 수밖에 없어” 지적

지난해 46억 원이라는 유례없는 액수의 횡령 사건을 겪고도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전현희) 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이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인데,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며 의문을 표한 것도 사실이다.

확인 결과 건보공단이 46억 원 횡령 사건에도 1등급을 받은 것은 권익위 청렴도 평가 시스템상 충분히 가능한 일인 것으로 분석됐다.

즉, 특별히 잘못됐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왜일까.
 

자체적발은 부패실태 평가에서 감점 요소에 해당 안 해

외부적발만 감점…46억 원 횡령은 자체적발 사례로 분류

권익위는 최근 ‘2022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를 공개했다.

기존의 청렴도 측정과 부패방지 시책평가를 통합해 2022년부터 새롭게 적용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는 총 569개 기관을 대상으로 △청렴체감도(공직자·국민 설문조사) △청렴노력도(반부패 노력 평가) △부패실태(부패사건 발생 현황) 등 영역별 평가결과를 합산·감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목할 점은 공공기관 중 ‘공직유관단체 준정부일반’으로 분류된 건보공단의 팀장급 직원 A씨가 지난해 약 46억 원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주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청렴도 1등급(청렴체감도 1등급, 청렴노력도 1등급)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는 건보공단 외에 종합청렴도 1등급을 받은 공직유관단체(준정부일반)는 신용보증기금이 유일하고,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조차 청렴체감도 2등급·청렴노력도 3등급에 머물러 종합청렴도 2등급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번 종합청렴도 평가에 있어서 감점 여부를 결정한 유일한 영역은 ‘부패실태’다.

부패실태는 평가기간(2021년 7월 ~ 2022년 11월) 중 해당 기관의 부패사건 발생 현황을 점수화해 평가에 반영했으며 부패 유형은 △반부패 법령(부패방지권익위법,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방지법, 공무원행동강령, 형법 등) 관련 부패사건 △소극행정으로 인한 징계 △직무 관련 성 비위 사건 등으로 분류됐다.

부패행위자의 직위, 총 부패금액, 기관 정원 규모, 부패사건 발생 시점 등을 반영한 산식에 따라 정량평가하고 주요 부패사건,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현장·서면 심의회를 통해 정성평가했다.

여기까지 봤을 때 건보공단의 경우 지난해 46억 원 횡령 사건으로 인해 부패실태에서 대량 감점을 받았을 것 같지만, 오히려 1등급을 획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이유는 부패실태의 다소 특이한 평가 기준 때문이다.

부패실태 평가 기준에 따르면 ‘기관의 자체적발 사건은 제외하고 외부적발 사건만 반영한다’는 표현이 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심각한 사건이어도 권익위, 공수처, 검찰, 경찰, 감사원, 상급 감독기관, 언론 등 외부에서 적발된 게 아니라 기관 스스로 자체적발했다면 부패실태 평가 감점 요소에 우선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건보공단의 46억 원 횡령 사건은 우연한 기회로 내부 직원이 먼저 발견해 건보공단이 직접 고소장을 접수했고 다음 날 즉시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 경위를 공개한 만큼 외부적발이 아닌 자체적발로 분류할 수 있는 것.

이와 관련 권익위 청렴조사평가과 관계자는 “자체적발까지 감점에 반영하면 기관 스스로 노력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부패와 관련된 모든 징계와 사건들을 평가에 반영하지는 않고 외부적발이 돼야만 감점을 한다”며 “부패사건 중 어떤 건이 반영되고 어떤 건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으나 정해진 기준에 따라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 반영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울러 건보공단 횡령은 평가 기간 중에 발생한 사건이기도 하다”며 “다만 권익위도 계속 인지를 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부언했다.

실제로 2022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의 목적은 ‘기관의 종합적인 청렴 수준을 측정·평가해 부패 취약 분야 개선 등 각급 기관의 반부패 노력을 촉진·지원하고 청렴 인식과 문화를 확산한다’고 표현돼 있다.

즉, 자체적발까지 감점하는 것은 종합청렴도 평가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게다가 권익위는 자체적발률 60% 이상인 기관에 가점을 부여했는데 건보공단은 지난해 자체적발률 100%를 기록, 부패행위 발생을 사전 예방하고 청렴한 조직문화를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체적발이라 하더라도 부패사건 없어지는 것 아냐

형식적 방법 벗어나 현실 고려한 평가 방법 찾아야

이처럼 거대 횡령에도 평가 시스템상 1등급을 획득한 건보공단의 사례는 권익위 청렴도 평가의 목적과 취지를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을 좀 더 세밀히 다듬고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게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된 주장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청렴 수준 제고와 부패행위 방지를 위해 기관 스스로 노력하도록 유도한 평가의 목적과 평가 기준 등은 그 취지에 있어서 충분히 이해하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특정 사건을 청렴도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평가의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것이 100% 자체적발이라고 할지언정 물의를 일으킨 심각한 사건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가 기준인 것처럼 보이지만, 달리 말하면 평가 시스템에 작은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과 다름없다”며 “평가결과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신뢰도가 높아지는데, 아무리 평가 기간이 애매했고 명확히 정해진 기준에 따라 평가했다고 하더라도 건보공단의 2022년도 청렴도 1등급 획득은 조금 의아하다”고 말했다.

한편, 권익위는 이번 종합청렴도 평가결과 보고에서 부패방지 제도 구축과 반부패 제도 인식 제고 영역 등에서 건보공단을 우수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

권익위는 “건보공단은 인사규정 시행규칙, 자금운용규칙, 물품관리규칙, 건강보험정보분석사 사내자격검정규칙 등에서 부패요인을 발굴·개선해 제량규정의 구체성·객관성, 이해충돌 방지, 예측가능성 등을 제고했다”며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간담회,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부패·공익신고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등 부패·공익신고 홍보를 연중 지속적·상시적으로 실시했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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