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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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는 ‘없다’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2.09.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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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암 치료 인프라 열악…중증필수진료 사각지대
전국 소아청소년암 전문의 67명…이 중 25% 5년 내 정년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교수, “소아암 완치율은 세계 최고지만 깍두기 신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는 9월 6일 기자에게 “소아청소년암 완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아청소년암은 암정책에도, 소아청소년과질환에도, 희귀질환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깍두기 신세”라고 한탄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부교수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부교수

소아청소년암을 진료하는 김 교수는 출산 장려 정책만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며 아픈 아이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하면 뭐하냐고 반문했다.

그 이유를 묻자 국내 소아청소년암 치료가 중증필수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어디에서 질환이 발생해도 치료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

현재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은 거주지의 대형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렵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의 부재로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줄어들고 있고 소아응급실도 문을 닫게 되면서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은 열이 나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치료가 지연돼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 중환자실로 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소아청소년암 아이를 둔 엄마는 ‘아이가 열이 날까 봐 매시간 체온을 재죠. 그런데 제가 사는 춘천시에 대학병원이 2군데 있는데도 백혈병 치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없어요. 그래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아이가 미열만 나도 담당 선생님이 있는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할 정도다.

2022년 현재 강원, 경북, 울산 지역은 전문의가 부재하거나, 최근에 교수들이 은퇴 후 후임이 없어 입원 진료가 불가능하다. 울산 지역의 경우 은퇴한 교수 1명이 외래 진료만 시행 중이다.

또한 4~5명이 있는 지역도 각 병원 별로는 1~2명에 불과한 인원이 근무 중으로 항암 치료 중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료 중인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은 67명으로,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2세”라며 “이들 중 25%은 5년 내, 50%는 10년 내 은퇴 예정인데, 최근 5년간 신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평균 2.4명뿐으로 10년 후에는 소아혈액종양 진료의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과 같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충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암의 경우 성인암에 비해 완치 생존율이 월등히 높다. 현재 국내 소아암 환자들의 완치율,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해 5년 생존율이 약 85%인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성인암에 비해 매우 적은 수가 발생하지만, 조혈모세포이식,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면역치료, 뇌수술, 소아암 제거수술 등 치료의 강도나 환자의 중증도는 오히려 성인에 비해 높은 편이다.

또 외래에서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군이 많은 성인암에 비해,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대부분이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숫자가 적어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있는 한,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인 이상은 필요하다.

문제는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무리 아이가 줄어도 1,000명은 암에 걸릴 것”이라며 “만일 50명이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면서 살 수 있나? 아무도 이런 근무 환경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담했다.

이어 “50대 교수님이 일주일에 3번 당직서고 3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있겠냐”면서 “어느 의사도 주말도 없이 혼자서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의료보험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이 이러한 현실을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안전한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 생존율은 점차 낮아질 위기에 쳐해 있다”며 “저출산 시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암 치료에 국가적인 지원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고 주장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신경외과 의사 부족과 외상외과, 점점 사라지는 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병원 등처럼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을 365일 돌볼 수 있는 소아혈액종양 의사도 이와 같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지역 외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절반 이상의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 비율은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김 교수는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시행한 건강보험공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서울 외 지역 거주자 중 70%가 대부분 서울 및 경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치료 기간 2~3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치료 기간 동안 환자 가족들은 치료비와 주거비 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린다. 이로 인해 한 가정이 붕괴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면서 “이게 보건복지부에서 말하는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입니까”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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