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안이 졸속인 결정적 이유…‘사회적 합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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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안이 졸속인 결정적 이유…‘사회적 합의 부재’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2.04.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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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간호단독법 문제점 및 대체 방안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 개최
의료법 적용 대상인 의사뿐만 아니라 간무사·요양보호사 등 일절 무시
간호사 관련 수가 인상 및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 등으로 해법 찾아야

간호단독법이 내포한 가장 큰 문제점이자, 간호단독법이 졸속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회적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간호단독법이 양산할 문제점에 대한 우려는 차치하고 의료법 적용 대상인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심지어 국민과도 일절 논의하지 않은 대표적인 악법이라는 것.

이 같은 지적은 대한의사협회 간호단독법 저지 비상대책특별위원회가 4월 3일 서울시의사회관 5층 대강당에서 연 ‘간호단독법 문제점 및 대체 방안 마련을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범보건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환자단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선,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특별법을 제정하면 특별법을 적용받는 대상을 기존 일반법을 적용받던 대상과 구분하는 결과를 낳으므로, 기존 일반법 적용 대상들과 특별법 적용 대상들 사이에서 반드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합의가 없을 시 특별법 내용의 유불리에 따라서 특별법을 적용받을 대상과 기존 법을 적용받는 대상 사이에 상반되는 특혜 또는 차별이 각각 가해진다는 의미다.

또한 전 이사는 “간호단독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졌어야 한다”며 “간호법안의 적용대상인 의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이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박수현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일반 국민은 간호단독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고 찬성하는 경향이 큰데, 이는 그동안 코로나19로 고생한 간호사에게 마치 ‘처우개선’이라는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처럼 홍보한 간호계의 잘못”이라며 “국민과의 사회적 합의도 없이 간호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갈했다.

새로운 법률의 제정은 기존의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데, 간호단독법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의료시스템의 유기적인 관계와 의료적 상황의 가변성, 임의성, 개별성을 간과한 법률적 규제는 소통하고 합의하는 진료환경이 아니라 특정 법안에 기대어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장치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단독법인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간호조무사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에 주목했다.

전동환 간무협 기획실장은 “현재 발의된 법안은 타 법률에 우선 적용되면서 간무사의 사회적 지위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간호법안이 제정되면 의원 이외의 기관에서는 간무사가 간호사를 보조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바, 각종 충돌 및 업무 범위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응급구조사들도 간무사와 동일한 지적을 이어갔다.

박시은 대한응급구조사협회 사업이사는 “현 간호법안은 타 보건의료 직종의 사회적 필요성과 정체성을 부정한 독단적인 법률일 뿐만 아니라 간호사 본연의 업무인 ‘간호’와 ‘진료의 보조’를 망각했다”며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간호조무사, 치과위생사 등의 구체적인 의견을 청취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이 완전히 부재했다”고 언급했다.

법조계도 현재와 같은 내용으로 간호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조진석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입법정책 실현 측면에서의 유불리성, 경제성, 법체계의 정합성 유지 및 적합성 유무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 제안된 간호법안은 체계 정당성의 결여, 입법 목적의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내재돼 있으므로 제안된 법안 그대로 제정돼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도 간호단독법이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간호법안 제정이 필요한 부분인지에 대한 검토는 좀 더 전문가들이 모여 국민의 관점에서 의료체계 전반에 걸쳐 검토해야 한다”며 “국민과 소통하고 의견을 함께 모으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도 “적절한 사전 준비와 사회적 합의가 없이 강행하는 간호단독법안의 입법과 졸속한 시행은 수십 년간에 걸쳐서 사회적 합의로 이뤄온 현행 의료체계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며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할 환자의 권리와 기회를 침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계의 생각도 범보건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주희 한국의료법학회 학술이사는 “간호사만을 독립적으로 규율하는 법안을 만들면 직역 간 갈등 유발과 불필요한 행정조직의 방만한 운영, 예산 낭비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간호인력의 근로조건 및 처우개선에 대한 논의는 전체 보건의료 체계와의 조화를 모색하면서 통합적으로 진행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 등으로 다른 해법 찾아야

한편, 이날 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간호단독법의 대체 방안 모색’이란 제목의 발제를 통해 간호사 관련 수가 인상 및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 등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법 신설로 직역 간 갈등을 새로 유발할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활성화시켜 간호인력의 근로조건 및 처우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문석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우선 보건의료인력 통합 지원대책과 간호사 처우개선을 위한 간호사 관련 수가 인상을 촉구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다.

문석균 실장은 “다양한 보건의료인력의 근무환경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간호사 급여 수준과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는 간호관리료를 개선하지 않고는 어떠한 정책으로도 간호사 처우개선의 실질적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즉, 원가보전율이 약 39%에 불과한 간호관리료를 최소한 원가보전이 가능한 수준으로 인상하고, 입원료를 인상하되 그 인상분을 간호관리료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 실장은 “간호요구도를 반영한 간호관리료 개선을 통해 간호사에 대한 합당한 보상 및 적정 인력 배치를 현실화해 간호사의 업무 만족도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보건의료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인력을 고려한 종합적인 계획 수립이 가능하고 현실 적용 가능성, 지속 가능성, 직역 간 형평성 관점에서 매우 우수한 법률이니 이를 정비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상위 기구가 존재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업무 범위가 개별적으로 설정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적 보건의료인력 면허 및 자격 관리 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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