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코로나 전사다] 의료진도 누군가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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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나 전사다] 의료진도 누군가의 가족
  • 병원신문
  • 승인 2022.01.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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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혜진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임상조교수
기초적인 원칙과 상식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의료진도 누군가의 가족

“모레 저녁 7시부터 11시가 철학관에서 정해준 시간이에요. 그때가 아니라면 안돼요.”

코로나 전사들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어제 일어난 일이다. 40주 2일로 입실한 확진자 임산부가 진통이 시작되자 저렇게 말하며 분만을 거부했다. 방호복을 입고 수술준비를 하던 의료진과 수술 방 차폐를 진행하던 인력들이 모두 진이 빠졌다. 더더군다나 방금 전 호흡곤란이 너무 심해 조산으로 저체중아를 출산하고, 인공호흡기를 단 채 나온 산모를 확인하고 나온 주치의는 더욱 그랬다.

코로나에 가장 먼저 앞장서서 싸워온 본원에서 지난 2년을 꼬박 있으면서 배운 것은, 인간은 정말 다양하고 세상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많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산과 수술이 많아서 선택의 상황이 왔을 때 좀 더 다급한 요청을 해서 받았는데, 도착하더니 소위 말하는 빅5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 달라며 난리를 피우는 산모도 있고, 환자 상태가 호전돼 퇴원이 가능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도 의료진에게 욕설을 뱉으면서 양성인 환자를 데려가서 가족들이 감염되면 책임 질 거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료에 협조적이고 무사히 치료를 받고 나가지만,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에게 성희롱이나 추행을 하거나, 욕설과 협박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환자도 있다.

하루에 수 시간씩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보는 일은 매우 힘들다. 방호복을 입고 잠시만 설명을 하려고 말해도 숨이 가쁘고, 추운 날에도 어느 정도 입고 나면 식은땀이 난다. 더 오래 환자 곁에서 일해야 하는 의료진들은 들어가 있는 동안 식사도 어렵고 화장실을 못 가서 요로감염에 걸리기도 한다. 방호복을 벗고 씻고 나오면 얼굴에 눌린 자국이 있는 채 한동안 진이 빠져 있곤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환자나 보호자의 무리한 요구나, 인터넷을 통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의료인의 말을 듣지 않아 나빠지는 경과를 지켜보는 것, 이기적인 일부 동료들이나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훨씬 힘들다. 아, 물론 24시간 내내 울려대는 병상 배정 요청 연락도 가슴을 철렁철렁하게 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을 지치게 한다.

2년간 코로나와 함께 보내면서 가끔 사회와 고립돼 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들 힘들겠지만, 중증 및 위중증을 지속적으로 보다 보면 삶과 죽음 말고는 다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게 나를 비정상으로, 무감각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가끔 두렵다.

50세 아주머니가 몸에 관을 4개 달고 인공호흡기를 주렁주렁 단 채 있어도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네요’라고 생각이 들 때 그렇다. 앞선 사례처럼 심폐소생술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를 보고 나왔을 때, 병실 청소가 안됐다며 간호사를 괴롭히거나 철학관이나 주변의 이상한 조언으로 고집 피우는 경증 환자를 보면 가끔 덜 아파서 그런 소리 한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며 ‘정말 성격 버렸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중환자실이 없고 기계가 없어서 그냥 이야기만 들어도 위중증인 환자를 거절했는데, 증상이 경증이던 환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호자와 한방을 쓸 수 없다면 입원하지 않겠다고 떼를 쓸 때, 방금 사망환자가 발생해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나오는 길에 사망자가 있다는데 왜 병상이 안 비어서 신규환자가 못 들어가냐고 물어보는 연락을 받을 때 그런 느낌이 든다.

중증환자가 에크모와 인공호흡기, 투석기를 단 채 100일을 버티고 수술을 거쳐서 산소 없이 걸어서 퇴원할 때 모든 수술 및 중환자 선생님들이 고맙다가도 코로나 환자 지나간 자리를 걸어다니게 한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동료 의료진을 만날 때 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일개 사기업의 비정규직 직장인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이러고 있나’, ‘내가 이렇게 주말도 저녁도 없이 나를 갈아 넣어서 일하고, 가족과의 시간도 없고 개인업무는 전부 미뤄두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아직도 이에 대한 답은 없고, 아마 이에 대해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사들’이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를 치료하는 의료진들도 다들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이며, 남편이나 아내이고, 엄마나 아빠일 수 있다. 그들에게 너무 과중한 짐을 몰아주지 않고 적어도 환자치료 이외의 일로 스트레스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으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들 전사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장인이자 동료다. 코로나가 없어진다면 매우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지금 시점에서 장기적으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먼저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행동해보면 어떨까.

‘전사들’로 우상화하면서 그들의 희생과 시간 투자, 노력을 당연시하기보다는 적절한 시간적·경제적인 보상과 함께 상식과 원칙에 맞는 대응이 있다면 전사들도 다시 의료진으로 돌아가 더 많은 환자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기초적인 원칙과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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