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자병원이 ‘공공’병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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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자병원이 ‘공공’병원은 아니다
  • 최관식 기자
  • 승인 2021.06.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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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자병원 추가 설립 필요성 및 방안 연구 공청회’ 개최
토론자들 “의료공공성은 국가 및 지방정부 재원으로 운영”

“부족한 공공 분야 소유 병상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로 보험자병원을 바라본다면, 보험자가 아니라 국가 및 지방정부가 우선적인 재정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만 설립 이후의 운영에 있어서 지방정부의 책무를 포함한 구체적인 노력이 더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석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교실, 보건대학원장)는 6월 30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서울 중구 소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빌딩에서 개최된 ‘보험자병원 추가 설립 필요성 및 방안 연구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나와 이같이 말했다.

이날 윤 교수는 토론에서 “보다 정확한 원가 생성을 위한 추가 보험자병원 확충이 필요하다면 기존에 설립돼 이미 국민 및 공급자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전국 10개 국립대학병원과 우선적으로 협조관계를 구축해 자료를 제공 받고 필요한 노력을 더해가는 것이 정책적으로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일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건강보험재정이 단일보험자 체제에서 준조세로서 사실상 국가 예산의 범위라는 논리라면 차제에 ‘건강보험 기금화’ 재논의를 통해 재정의 활용 및 책임 범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계·전문가와 가입자단체, 시민단체, 공급자단체, 정부 등 총 10명의 토론자가 찬반 의견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한 이날 공청회에서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보험자병원이 단일병원으로는 대표성 문제 등의 한계를 보이는 만큼 다수 보험자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임 교수는 다수의 보험자병원은 의료사업 부문의 최근 성장세를 감안할 때 인지도 향상과 의료부문 비중 확대, 새로운 서비스 확보 등을 위해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경쟁적 우위 확보 △각종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 △보다 깊이 있는 경영 노하우 △규모의 경제 △자본 접근성 용이 △마케팅 측면에서의 우위 등의 부수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보험자병원 확충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공공병원이 제공하는 의료는 민간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와 차이가 크지 않다”며 “공공의료를 강조하다보면 민간병원 중심의 공급체계가 잘못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처럼 공보험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의료제도에서는 민간병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민간병원과 경쟁하는 공공병원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대폭 늘리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며 “민간병원을 인수, 대체하는 형태라면 모를까 신규 설립은 과잉상황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투자비용을 마련해 병원을 지어도 이를 유지하기 위한 경상의료비는 지속적인 국민 부담이 되며, 구하기 어려운 의사인력의 희소가치를 더키워서 인건비 상승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원가보상의 논리에 따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형선 교수는 “건강보험은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 공공과 민간 구분 없이 같은 가격을 지불하므로 특정 지역의 공공병원 ‘일반 급성기의료’에 대해 보험료 재원을 추가로 지원·사용한다면 모순이 생긴다”며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맡겼을 때 취약한 부문에 대한 서비스에 더 집중해야 하며, 이 때 생기는 착한적자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계·전문가 패널로 이 토론에 참여한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은 “민간의료가 공급자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현 상황에서 정책결정자와 보험자가 공급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급체계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며 “고령화 진전과 더불어 민간과 공공을 포함해 독립적이고 단편적인 노인의료 시설 운영보다는 연계되고 통합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복합체를 육성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인센티브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차장은 “일산병원과 유사한 규모의 보험자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며 “재활 분야에 특화된 방식의 운영 및 입소보다 재가의료 비중을 높인 형태 등 다양한 운영 체계 도입 필요성이 있으며 재정은 건보재정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자체 예산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도 보험자병원 설립 필요성에 찬성한다면서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다수의 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왜 수천 억원의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보험자병원이어야 원가 파악이 가능한가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며 “보험자병원이 하나든 열이든 같은 의료행위를 하는데 원가가 다를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원가 조사를 위한 민간병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묘안을 짜내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팀장은 “전국민의 보험료로 설립된 보험자병원이 단지 공공병원으로서만 기능한다면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험자병원에 대한 이같은 회의적인 시각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인상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우선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원가분석을 위해 급성기병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이미 국공립병원들 원가분석이 다 돼 있고, 신포괄수가에도 원가가 다 반영돼 있는데 굳이 건보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중복투자”라며 “장비·시설·병상 등의 공급과잉 상황 하에서 양적 팽창과 중복된 투자는 고민이 더 필요하며 필수의료 강화와 의료공공성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주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건보재정은 일반회계가 아니라 보험 가입자인 전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마련된 재원”이라며 “보험자가 운영하는 병원은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며 재정이 제약된 상태에서 비용 지출의 우선순위와 보험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 과장은 “공공병원 확충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라면서 “보험재정이 합리적으로 잘 쓰일 수 있도록 잘 다듬어진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며, 오늘 토론 내용을 반영해서 더 나은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임영이 의료서비스혁신단장은 발제를 통해 “건강보험정책 시범적용의 장으로서 수가지불제도 및 보건의료정책 개발·지원 기능을 수행할 모델병원의 중요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산병원의 기능 수행 성과 결과를 보험자병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향후 보험자병원이 담당해야 할 기능과 역할을 고려해 추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단장은 미래 보험자병원은 종별과 규모별 1개소씩, 최소한의 구조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병상공급이 과잉인 상황에서 신축보다는 인수 후 리모델링 대안이 바람직하나 건물 노후화 등 비용 대비 효과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재원 확보 방안의 경우 건보재정 100%로 추진되는 보험자병원은 지방자치단체 재원 분담 부담이 없다는 측면에서 유치 요구도가 증가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지자체들의 과열경쟁을 방지하고 안정적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재원부담 등 정책적 책임성 부가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영이 단장은 신규 보험자병원은 △(가)노인의료돌봄 통합서비스 모형 △급성기 종합병원 단독 모형 △(가)소아재활·장애인 건강통합관리 모형 3가지를 제시했으며, 이 경우 초기 투자비는 각각 928억원, 2천456억원(400병상)·3천57억원(500병상), 705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 부산 금정구 소재 침례병원을 인수해 노인의료돌봄 통합서비스 모형을 적용할 경우 초기 투자비 1천349억원, 급성기 모형 사례 적용시 2천414억원(400병상)·2천898억원(500병상)이, 소아재활·장애인 건강통합관리 모형의 경우 979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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