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병원종사자들의 안타까운 자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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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병원종사자들의 안타까운 자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 병원신문
  • 승인 2018.02.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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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미 세브란스병원 법무팀 변호사
▲ 조건미 변호사
한 젊은 가수의 자살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 일이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젊은 간호사의 죽음이 마음을 내려앉게 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지만 비단 한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속한 병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발생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지방 종합병원의 사례이다. 25세의 수술실 간호사 A는 입사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거주하던 주택의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사망 한 달 전부터는 정신분열증, 적응장애 진단 하에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A의 유족은 A가 업무 중 의사들과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분열증, 적응장애 등을 겪게 되었고, 위와 같은 병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며 병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에서는 선배 간호사나 의사들이 A에게 정신분열증, 적응장애가 발병할 정도의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기 때문에 A의 기질적, 내재적 특성에 기인한 것일 뿐, 업무와 사망 간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A가 근무하는 동안 의사들과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망인의 정신질환이 발병한 것임을 인정하였으며, 병원은 근로계약 상 부수적 의무로서 피용자에 대한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므로 병원으로서는 A의 근무부서를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A씨의 스트레스에 취약한 기질 등을 감안하여 병원의 과실은 20%로 제한하였다.

배상액만 놓고 보면 2천만원 정도에 그쳐 큰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교육의 일환 또는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일명 ‘태움’에 대해 병원의 조치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근로자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고통 받는데도 이를 방치하는 것은 고용자로서 병원의 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간호사 뿐 아니라 전공의의 경우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공의 B는 지방 국립병원에서 근무했다. B는 약 4개월 동안 대부분 병원 당직실에 24시간 대기하면서 근무했다. 틈틈이 눈을 붙일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했고, 근무하는 일주일 동안 170번 콜을 받았으며, 야간이나 새벽에 울린 전화는 44번이었다. 사망 직전 며칠은 진료와 컨퍼런스가 겹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B는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사망에 이르렀다.

B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B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심 청구 역시 기각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병원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행정법원은 B의 사망은 병원에서 수행한 전공의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설시했다. 또한 유족들은 별도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제기했고, 법원은 병원의 손해배상책임 역시 인정했다. 병원이 B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를 부여한 후 그러한 업무를 개선하기 위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B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서 비롯한 우울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병원은 ‘전공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과 대한병원협회가 제정한 ‘전공의의 표준 수련 지침’에 따라 전공의를 부조하고 보호할 법령상·조리상 의무가 존재한다고 설시했다. 해당 규정은 적정한 전공의 근무환경에 대한 판단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병원이 B가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환자 수 및 업무량을 배정했으면서도 업무량이나 인력배치 등을 조정하거나 휴식조치를 다하지 않은 과실, 정신적 어려움을 인식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과중한 업무가 힘들더라도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거나 상급자 등에게 문제를 제기해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택한 고인의 잘못도 참작하여 병원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앞선 A사건에 비해 B사건은 선배나 동료의 괴롭힘보다 구체적으로 계량화하여 증명이 가능한 과도한 업무강도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보호의무 준수여부의 판단지표가 될 수 있는 명시적 규정이 존재했다. 그래서였을까. 법원은 B가 학업스트레스로 학생 시절 혼합형 불안, 우울병 장애 진단, 비기질적 불면증 진단 등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사건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로 병원의 책임을 인정했다.

우리나라만 병원 종사자들의 업무스트레스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위계질서가 엄격한 병원문화 등으로 인해 종종 이러한 일이 일어나곤 하는 모양이다.

일본인 남자간호사 C는 엄격하다고 소문난 병원에 취직하여 병동의 막내로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선배들의 괴롭힘은 신체적 학대로도 이어졌고, 폭언, 협박 등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살을 선택했다. 법원은 선배들의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함과 동시에 병원 역시 이러한 괴롭힘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에 대한 책임은 없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보아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했다.

일본의 한 대학병원 수련의도 타 병원 파견 후 2개월 만에 자살했다. 업무과다 및 상사의 위압적인 언행, 폭행 등으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법원은 병원이 시간외 근무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일터 괴롭힘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것이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 취지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법원은 이러한 병원 종사자들의 업무스트레스, 병원 종사자 간 괴롭힘에 대해 병원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인다. 기준에 비추어 어긋나지 않도록 업무량이나 인력배치를 적절히 조정하고, 최소한의 휴식을 제공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으로 자살의 징후를 발견해야 할 책임도 부여하고 있다. 당사자가 괴로움을 호소한다면 부서 배치 변경 등 대책을 세워 가능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물론 당사자 역시 적극적으로 병원에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여야 한다.

한 병원만의 일도 아니고, 한 직군만의 문제도 아니며, 비단 우리나라 의료계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사실 어느 분야 못지않게 거칠고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병원 종사자들, 특히 일선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들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성과 안정성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되어 그들의 고통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병원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인력을 맘껏 충원할 수 있을 만큼 병원에 적절한 수익성을 보장해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근무환경도 좋아지고 이렇게 안타까운 일 역시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의치 않은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병원 종사자들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을 줄이고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병원의 적극적 보호조치 및 규정 준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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