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원, 원하는 곳만

충분한 간호인력 확보 후 단계적 시행
병원 현실 직시, 사업 방향 재조정 필요

2013-09-09     병원신문
 환자를 간병하느라 연간 최대 5조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림대와 고려의대,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0년 간병 서비스 실태조사’ 결과를 활용해 급성기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연간 지출되는 간병 부담액을 추정한 결과, 우리나라의 총 간병 부담액은 사적 고용간병과 가족간병 비용을 합쳐 4조4천억원에서 약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가족 간병을 제외하고 간병인 고용에 따른 지출만 계산하면 요양병원과 급성기병원에서 지출되는 간병비는 각각 약 1조1천억원과 9천억원에 이른다. 이같은 간병 부담액은 각각 19.3%, 88%인 급성기병원과 요양병원의 간병 이용률을 기준으로 추산됐다.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지난달부터 시작된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은 일단 환자들로 부터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에 참여중인 한 병원에 따르면 병동환경이 깨끗해 졌고 혼잡한 것도 없어져 많은 환자들이 좋아하고 있다. 외롭고 심심한 것을 빼고는 괜찮다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간병 서비스 제도화를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2010년 5월부터 12월까지 10개 병원의 313 병상을 대상으로 비급여를 전제로 한 공동간병 형태의 간병서비스 제도화 시범사업을 벌인데 이어 올 8월에는 13개 병원의 26개 병동 1천276개 병상에 대해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추진중이다. 간병인을 활용한 2010년 간병서비스 제도화 시범사업와는 달리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와 같은 전문 간호인력을 활용하고 있다는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은 시작 초기부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채용에서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으로 새로 채용해야 하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각각 277명과 165명. 반면 지난 8월27일 현재 채용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각각 180명과 119명으로 채용률이 각각 65%와 72.1%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시작한 병상은 전체 신청병상의 72%인 19병동 908병상으로, 나머지 7개 병동 368병상은 필요한 간호인력을 구하지 못해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3개 병동 143 병상을 신청한 세종병원은 1개 병동 44 병상만을 시범병상으로 운영, 시범병상 개시율이 28.7%에 불과하다. 또한 삼육서울병원은 3개 병동 154병상을 신청했으나, 간호사 등을 구하지 못해 29.2%인 1개 병동 45병상만을 시범병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삼육서울병원 이지윤 기획조정실 과장은 “15명의 간호사를 포함해 20여명의 간호인력을 충원, 이달 중에 64 병상 규모의 병동 한곳을 추가로 오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병원은 ‘보호자없는 병원’ 시범사업 참여를 위해 20명의 간호사와 22명의 간호조무사를 충원하여 했으나 간호사 5명(채용률 25%)과 간호조무사 15명(채용률 68.1%)을 채용하는데 그쳐 시범병상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삼육서울병원 역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채용률이 각각 22.9%, 30.8%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사업 대상 13개 병원중 5곳이 신청한 병상중 일부만으로 시범사업에 나섰다.

연구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모든 병원에 ‘보호자없는 병원’을  도입하면 약 5만명 가량의 간호사 충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면허가 발급된 간호사는 29만5천294명. 이중 40.8%인 12만491명이 의료현장에서 활동중인 것을 감안하면 활동 간호사가 40% 이상 증가해야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시범사업에 참여중인 병원 13곳의 경우 100억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돼 간호사 충원이 가능하지만, 시범사업이후 입원료가 적정수준으로 인상되지 않을 경우 간호인력 충원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병원에 돌아갈 수밖에 없어 병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인천 한림병원장)은 “간호사 비중을 70%로 정한 설계부터 잘못됐다”며 ‘보호자없는 병원’ 기본설계에서 부터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다. 환자가족들이 원하는 간병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 후 요구도에 맞춰 간병인력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  ‘보호자없는 병원’은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위주로 판을 짰다는 것이다. 간호나 간호조무사로 국한하지 말고 이용 가능한 모든 간병인력자원을 총 동원하자는 것이 정 위원장의 주장이다.

정 위원장은 이어 “ 간병 수발인력까지 포함해 가능한 한 넓은 스펙트럼을 짜 놓은 다양한 형태의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들어 병원의 선택에 맡겨야할 것”고 제안했다.

정 위원장의 이같은 주장은 간호인력에 대한 면밀한 수급계획 없이 ‘보호자없는 병원’을 추진, 본 사업 시행도중에 낭패를 겪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병원 현실에 맞게 방향성을 새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 강준 사무관은 “강제적으로 추진할 생각은 없고, 선택적으로 희망하는 병원에 한해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간호인력 수급으로 충분한 인력 확보 후에야 제도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강 사무관은 “지역거점병원 중심으로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고, 병원계에서 의료현실에 맞는 ‘보호자 없는 병원 모델’을 제시하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병원에 대한 보상도 최저기준을 정해놓고 간호사 수 등에 따라 가산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정 위원장의 의견이다. 그래야만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에 병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로는 3등급 이하 병원들로서는 ‘보호자 없는 병원’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간호체계를 들여와 간병제도를 개선한 일본의 경우 간호사 인력비율과 간호조수 규모에 따라 합리적 보상책을 마련, 간병비 부담을 경감하고 병원 간병서비스의 질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팀 간호체계, 인력확충 등을 통해 간호계획, 간호기록 등에서 체계화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따라 간호료도 신간호체계 도입이전보다 20% 상승되고 간호사 이직률이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호관리료차등제 도입이후 만성적인 간호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자칫 간호인력수급 추계를 잘못하면 ‘보호자없는 병원’에 참여하는 병원으로 간호사가 몰리는 소위 ‘빨대현상’이 심화돼 중소병원과 지방병원의 간호인력난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수의 병원 관계자들은 ‘보호자없는 병원’ 사업과 관련, 일본처럼 적정보상을 맞춰주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형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3조4천억원에서 최대 7조6천억원이라는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입원료나 간호관리료, 혹은 다른 방법의 수가로 보상하겠지만, 적정 수가로 가기에는 너무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     

A병원의 한 관계자는 “제도 시행을 위한 재원마련이 가장 큰 문제”라며,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환자와 보호자의 ‘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인식전환도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머리를 감겨주면, 거동이 가능한 환자도 똑같은 간호서비스를 요구한다. 1인 간병을 강요하는 환자도 있다. 때로는 보호자가 간호서비스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해 간호사들의 사기저하를 유발한다. 중환자실처럼 면회시간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 간호인력난과 환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원계에 또 다른 부담을 강요할지, 아니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