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예의 없는 것들
내레이션으로 이끌어가는 재미 쏠쏠한 웃기는 느와르, 예의 없는 것들
2006-08-10 윤종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예의 없는 것들"에 속할까? 영화 "예의 없는 것들"(감독 박철희, 제작 튜브픽쳐스)의 홍보책자는 친절하게도 일상에서 만나는 예의 없는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막말해 놓고 10분 뒤에 장난치며 아무렇지 않게 말 거는" "소개팅 주선자로 나와 상대와 눈맞는" "영화 보는데 소곤소곤 영화 내용 다 말해버리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만 강한 척하는" "입안에 혀처럼 굴다 뒤통수 치는" 그런 사람들이 "예의 없는 것들"이란다.
그러나 영화 속 "예의 없는 것들"은 이들보다는 한수 위의 고수들이다. 정계ㆍ재계ㆍ교육계ㆍ종교계 등의 지도층 인사 중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암적 존재들이 바로 그들.
전문킬러 "킬라"(신하균)는 이런 "예의 없는 것들" 만을 골라 등에 칼을 꽂는, 나름대로 규칙을 가진 "분별 있는" 킬러다.
킬라가 킬러가 된 경위는 이렇다. 짧은 혀 때문에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그는 "쪽 팔리게" 사느니 차라리 말 없이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1억 원만 있으면 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칼질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그는 수술비를 모으려고 전문 킬러가 된다.
킬라는 주문받은 대로 "작업"을 하면서 도살자와 다름없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때 선배이자 동료 킬러인 "발레"가 "너 나름의 룰(rule)을 정하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이왕 죽이는 거 예의 없는 것들만, 불필요한 쓰레기들만 골라서 깔끔하게 "분리수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작업 이후 코밑 피냄새를 없애려고 독한 술을 즐기는 킬라. 그는 매번 들르는 바에서 끈적이며 거세게 구애하는 "그녀"(윤지혜)와 자주 마주친다. 킬라는 무례하게 굴면서도 가끔 속내를 보이는 그녀 때문에 헷갈리지만 말이 없는 자신이 좋다는 그녀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어느 날 킬라와 발레는 재래시장 재개발 건으로 폭리를 취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을 제거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라는 사전 정보에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던 중, 다른 놈을 처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로 인해 그녀와 함께 스페인으로 가서 투우사가 되려는 킬라의 꿈은 조직폭력배 무리에 의해 방해받게 된다.
"예의 없는 것들"은 코믹느와르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 외형은 느와르지만 영화를 이끌고가는 것은 코미디다. 영화 속 코미디의 핵심은 킬라의 내레이션. 짧은 혀 때문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 때문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킬라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킬라는 술에 취해 "너는 내게 고통이야"라고 울부짖는 그녀의 말에 "너는 내게 고민이야"라고 응수하는가 하면, 그녀와 관계를 갖기 전 그녀가 킬라에게 물을 먹이자 "소 잡기 전에는 물을 먹인다는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 웃기는 나라는 투우경기가 없지 않은가. 한우를 쓸 수도 없고..."라는 식으로 유머를 구사한다.
영화의 가벼운 말장난으로 재미를 주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재미와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예의 없는 것들"은 재미가 더 앞선 영화다.
신하균이 맡은 순진하면서도 엉뚱한 킬라 역은 "그에게 꼭 맞는 옷"이라는 느낌을 주고, 윤지혜의 불꽃 같은 열연은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2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