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천리주단기

절절한 부성애 그린 천리주단기

2006-07-15     윤종원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장이머우(張藝謀)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배우 다카쿠라 켄이 손을 잡았으니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Riding Alone For Thousands Of Miles)는 그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빛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두 거장에게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주제인 부성애를 절절하게 다루면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고, 대립각을 세우는 중■일 관계를 뒤로하고 양국 "민간인"들 사이에 흐르는 인간애를 포착하며 머리를 맑게 만든다.

다카타(다카쿠라 켄 분)는 10년간 벽을 쌓고 지낸 아들 켄이치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도쿄로 향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다. 부자의 화해를 바라던 며느리 리에는 경극 전문가인 켄이치가 중국에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신 건네며 위로한다.

비디오를 보던 다카타는 켄이치가 당시 촬영하지 못했던 "천리주단기"라는 경극을 올해 다시 중국에서 촬영하기로 경극 배우 리쟈밍과 약속했음을 알게 된다. 때마침 켄이치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이에 다카타는 켄이치 대신 비디오 속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 운난성으로 향한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보니 리쟈밍은 사생아를 버렸다며 자신을 놀린 사람을 소품 칼로 찔러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여행사에서는 리쟈밍보다 훌륭한 배우도 많다며 다른 배우와의 촬영을 권한다. 하지만 다카타는 오로지 리쟈밍을 찍어야한다며 교도소의 허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이 영화는 장이머우 감독의 평생의 숙원사업이었다. 어린시절부터 다카쿠라 켄을 존경해온 그는 켄과 꼭 한번 작업하고 싶어했는데, 그를 위해서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중■일 관계의 벽을 뛰어넘어야했다.
"연인"이나 "영웅" 같은 판타지물이 아닌, 현실에 발을 붙인 영화에서 일본인 배우, 그것도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를 기용하는 것은 시나리오 작업을 녹록지 않게 만들었다.

결국 4년간의 시나리오 작업 끝에 그가 찾아낸 소재가 바로 "천리주단기". "삼국지" 중 조조에게 생포된 관우가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신이 조조를 위해 싸울 수는 없다며 유비를 찾아 홀로 떠나는 이야기로 관우의 충정과 의리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이 관우의 충정이 다카타로 옮겨가면서 부성애로 바뀌는 과정을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풀어낸다. 하지만 단순히 그뿐이었다면 영화는 범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감독의 저력은 그가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던 관객의 예상을 보기좋게 깨는데서 발휘된다.

다카타는 극적으로 리쟈밍을 만나지만, 이번에는 리쟈밍이 "아들이 보고싶다"며 우는 통에 경극공연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자 다카타는 리쟈밍의 아들을 찾아 석촌이라는 산골로 향한다. "천릿길"을 생각보다 훨씬 어려우며,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역시 끝도 없는 것이다.

다카타가 리쟈밍의 아들을 찾아 석촌으로 가고, 석촌 사람들이 다카타에게 연회를 베풀며 환대하는 모습 속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은 모두 따뜻한 감성을 가진 인간일 따름이다. 그 속에서 리쟈밍의 아들을 가슴에 품은 다카타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화한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속 터지는 언어의 장벽이 유머러스한 윤활유로 작용하는 것도 영화의 만듦새를 좋게 한다.

20일 개봉, 전체관람가.

<연합뉴스>